퐁트넬

퐁트넬

다른 표기 언어 Bernard Le Bovier, sieur de Fontenelle
요약 테이블
출생 1657. 2. 11, 프랑스 루앙
사망 1757. 1. 9, 파리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과학자·문필가.

볼테르는 그를 루이 14세 시대가 낳은 가장 박식한 인물로 평가했다.

계몽주의의 독특한 사상 중 많은 부분이 그의 작품 속에 이미 배태되어 있다.

퐁트넬은 루앙의 예수회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가 파리에 정착한 것은 30세가 지나서 오페라 대본 작가로 유명해진 다음부터이다. 1683~88년 퐁트넬은 문학 활동으로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연애편지 Lettres galantes〉(1683, 증보판 1685)도 그가 명성을 얻는 데 이바지했으나, 〈죽은 자들의 새로운 대화 Nouveaux Dialogues des morts〉(1683, 제2부 1684)는 더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앞의 책보다 더 흥미가 있는 책이다.

〈대화 Dialogues〉는 루키아노스의 대화를 본떠 지은 책으로, 소크라테스와 몽테뉴 간의 대화, 세네카와 스카롱 간의 대화가 실려 있는데, 이 책은 새로운 철학사상을 보급하는 데 이바지했다. 철학의 보급에 한 걸음 더 이바지한 책은 〈신탁의 역사 Histoire des oracles〉(1687)이다.

이 책은 네덜란드의 저술가인 안톤 반 달레가 라틴어로 쓴 논문(1683)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 책에서 퐁트넬은 여러 이교들을 비판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역시 어쩔 수 없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이와 동일한 반(反)종교적인 성향은 그가 쓴 재미있는 풍자문 〈보르네오 섬에 대한 이야기 Relation de l' île de Bornéo〉에도 나타난다.

이 책은 보르네오의 내전에 빗대어 가톨릭교도들(로마)과 칼뱅교도들(제네바) 간의 분쟁을 그리고 있다.

퐁트넬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세계의 복수성(複數性)에 관한 문답 Entretiens sur la pluralité des mondes〉(1686, 1688)이다. 이 책에 나오는 재미있고 세련된 대화들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1686년 당시에는 전혀 지지를 얻지 못했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인정받는 데 영향을 미쳤다.

과학적 논증에 대한 퐁트넬의 근거는 빈약했으며 그가 한 계산은 당시에도 맞지 않는 것이 있었다. 퐁트넬은 불리한 시기에 책을 간행했다. 즉 그의 저서가 바탕을 두고 있던 우주 물질의 와동(渦動)에 관한 데카르트의 이론은 그 다음해에 뉴턴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에서 잘못된 것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세계의 복수성에 관한 문답〉은 매우 성공을 거두었다. 퐁트넬은 1691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701년에는 금석학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697년부터 퐁트넬은 과학 아카데미의 종신 간사로서 매우 영향력 있는 직위에 있었으며, 과학 아카데미에 제출된 연구논문집을 간행했고 과학 아카데미의 역사를 저술했다. 퐁트넬은 거의 유럽 각국에 있는 과학자들과 서신 왕래를 하여 새로운 과학의 발전에 뒤처지지 않았으며 특히 과학 아카데미에서 낭독되는 논평을 곁들인 사망기사를 통해(예를 들어 뉴턴과 라이프니츠에 대한 사망기사) 대중적인 명쾌한 설명을 하는 재능을 나타냈다. 퐁트넬은 몽테스키외와 절친한 친구였으며 볼테르에게 영향을 끼쳤다.

볼테르는 우주에 비하면 인간이란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말한 작품 〈미크로메가 Micromégas〉(1752)에서 퐁트넬의 방식을 흉내냈다. 퐁트넬의 가장 독창적인 공헌은 그의 책 〈우화의 기원에 관하여 De l'origine des fables〉에 나타난 역사학 방법에 대한 연구였다.

이 책에서 그는 비슷한 우화가 여러 문화에서 독자적으로 나타난다는 이론을 지지했고, 비교종교학 부문에도 시험적으로 손을 댄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