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M. 포스터

E. M. 포스터

다른 표기 언어 E(dward) M(organ) Forster
요약 테이블
출생 1879. 1. 1, 런던
사망 1970. 6. 7, 잉글랜드 워릭셔 코번트리
국적 영국

요약 대표작 〈하워즈 엔드〉(1910)·〈인도로 가는 길〉(1924) 등 소설작품과 많은 평론을 남겼다. 그의 소설은 낭만주의의 핵심 사상인 '정서의 유지'를 계속 견지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초기 낭만주의 작가들이 주창했던 '인간과 자연의 관계' 및 '상상력'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나타냈다.
아버지는 높은 도덕적 책임감을 지닌 열렬한 복음주의자였으며 어머니는 심약하지만 너그러운 기질을 지닌 사람이었는데, 부모의 이같은 성격 차이는 그에게 가정적 불안의 본질에 대한 지속적인 통찰력을 길러주었다. 케임브리지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평생 집필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초기의 장편·단편 소설들은 빅토리아 시대풍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시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그는 상식과 선의, 개인에 대한 존중 등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한 투쟁의 원동력이 된 공통적인 가치들을 잘 보여주었다. 말년에는 1946년 모교의 명예 펠로로 임명되어 케임브리지에서 생활했다.

포스터(E.M. Forster)
포스터(E.M. Forster)

대표작 〈하워즈 엔드 Howards End〉(1910)·〈인도로 가는 길 A Passage to India〉(1924) 등 소설작품과 많은 평론을 남겼다.

건축가였던 아버지는 포스터가 젖먹이였을 때 죽었으며, 어머니와 고모들이 그를 길렀다.

아버지는 높은 도덕적 책임감을 지닌 열렬한 복음주의자였으며 어머니는 심약하지만 너그러운 기질을 지닌 사람이었는데, 부모의 이같은 성격 차이는 그에게 가정적 불안의 본질에 대한 지속적인 통찰력을 길러주었다. 또 한편 켄트에 있는 턴브리지 기숙학교를 통학생으로 다닌 탓에 뒤에 영국의 사립학교 체제를 비판한 글을 썼다. 케임브리지대학교 킹스 칼리지에서는 해방감을 마음껏 누렸다. 처음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지적 경향에 따를 수 있었으며, 개인의 독자성과 온건한 회의론의 건강성, 북유럽 나라들의 엄격한 태도에 대한 균형추로서 지중해 문화가 갖는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케임브리지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평생 집필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초기의 장편·단편 소설들은 빅토리아 시대풍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시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는 조지 메러디스와 같은 앞선 영국 소설가들에서 주제(예를 들어 타고난 권리로서 여성들이 갖는 중요성)를 채택했지만, 19세기 후반에 유행했던 상세하고 복잡한 묘사는 버리고 좀더 자유로운 구어체로 글을 썼다. 처음부터 그의 소설에는 중산층의 생활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과 강한 사회 비판의 경향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남자와 여자가 만족스러운 생활을 이루려면 현실감과 상상력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지중해의 '이교사상'도 깊게 배어 있었다. 초기 소설 〈기나긴 여행 The Longest Journey〉(1907)에서 그는 현실감과 상상력을 따로 배양하면 안 되는데 만약 현실감만 강조하면 야만성으로 흐를 우려가 있고 반대로 상상력만 활발하면 개인의 현실 인식이 천박해지게 된다고 암시했다.

포스터에게 처음으로 큰 성공을 안겨준 좀더 야심적인 소설 〈하워즈 엔드〉에서도 그와 똑같은 주제가 나타난다.

이 소설은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슐레겔가(家)의 자매인 마거릿·헬렌과 몇 세대에 걸쳐 계속 현세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집, 즉 하워즈 엔드의 소유주 루스 윌콕스 사이의 결연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정신적으로 그들은 인생을 주로 상업적으로 이해하는 헨리 윌콕스와 그 자식들의 가치관에 맞서게 된다. 비록 주위의 진보적인 사람들은 그 연결을 위협하지만, 상징적인 결말에서 마거릿 슐레겔은 헨리 윌콕스와 결혼하여 실의에 빠진 그를 하워즈 엔드로 데려옴으로써 그곳에서 상상의 세계와 현세를 다시 연결시킨다. 그러나 이같은 현실과 상상력의 결합이라는 주제는 불안정한 것이었는데, 제1차 세계대전은 그것을 더욱 악화시켰다.

포스터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전시에 민간인으로 전쟁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3년을 보냈으며, 1912~13년과 1921년에 2차례 인도를 방문했다. 전후에 쓴 소설 〈인도로 가는 길〉에서 다시 예전의 주제로 돌아갔지만, 그 주제들은 부정적인 형태로 표현되었다. 현세 그 자체가 이질적인 것으로 보이는 광활한 인도 세계에 맞서 현세와 상상 사이에서 결합은 거의 이룰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새로운 경험에 대해 매우 개방적인 아가씨 아델라 퀘스티드만이 이 두 세계의 조화 가능성을 흘긋 볼 수 있으며, 그것도 그녀가 주요증인인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법정에서 단지 순간적으로만 그럴 수 있을 뿐이다.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은 다른 가치들, 즉 행정관 필딩이 상징하고 있는 진지함과 진실함, 영국인 방문객 무어 부인이 구현하고 있는 개방적이고 인정 많은 감성을 다루고 있다.

필딩과 무어 부인은 둘 다 완전히 성공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실패하지도 않는다. 이 소설은 불균형 상태로 끝을 맺는다. 인도인과 영국인의 직접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지만, 힌두교 축제에서 혼란스런 장면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사랑의 신이 탄생하는 의식에는 아델라의 경험에서 예상되는 앞으로의 더 많은 가능성과 그 가능성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잘 어우러져 감동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포스터의 사고는 나중에 진실성과 관대성의 가치에 지배되고 있다.

인간의 현실과 상상력이 화해하는 것이 궁극적인 이상일 수도 있지만, 포스터는 인류가 점점 더 기술적 진보에 몰두하는 문명에 빠져들어가고 있다고 보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상식과 선의, 개인에 대한 존중 같은 가치들이 여전히 추구될 수 있는데, 뒤에 좀더 편견 없는 태도를 호소했던 포스터의 경향에는 이러한 가치관이 깔려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그는 어떤 종류의 전체주의에도 빠지지 않은 인간으로서 특별한 존경을 받았는데, 개인적 관계들과 단순한 예의범절에 대한 그의 믿음은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한 투쟁의 원동력이 된 공통적인 가치들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1946년 모교의 명예 펠로로 임명되어 케임브리지에서 생활하면서 죽을 때까지 많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후기에는 관대하고 중립적이며 절제된 도덕성을 강조함으로써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며, 20세기 중반의 문화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는 소설로 더 잘 기억되고 있는데, 이것들은 예전의 낭만주의 전통이라는 배경을 놓고 파악하면 더욱 잘 이해된다. 그의 소설은 낭만주의의 핵심 사상인 '정서의 유지'를 계속 견지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초기 낭만주의 작가들이 주창했던 '인간과 자연의 관계' 및 '상상력'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나타냈다.

이같은 관심은 초반에 들어와 낭만주의에 대한 거부운동이 확산되면서 더욱 불붙었다.

수필·단편소설·장편소설 외에도 대고모의 전기인 〈마리안 손턴 Marianne Thornton〉(1956), 인도의 경험에 관한 기록 〈데비의 언덕 The Hill of Devi〉(1953), 〈알렉산드리아:역사와 안내 Alexandria:A History and a Guide〉(1922) 등을 썼다.

동성애를 주제로 한 소설 〈모리스 Maurice〉는 그가 죽은 뒤 1971년에 출간되었지만 그보다 여러 해 전에 쓰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