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경

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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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돌로 만든 타악기로 편종과 함께 아악·당악에 쓰인다. 음높이는 경돌의 두께에 따라 다르며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난다. 1116년(예종 11)에 중국에서 유입되었다. 1425년~27년 박연이 제작한 편경은 삼분손익법에 의해 산출된 12율에 맞추어 제작되었다. 1428년(세종 10)까지 16매짜리 편경 33틀이 제작되어 여러 제향에 사용되었다.

돌을 깎아 만든 유율 타악기이며 편종과 함께 아악·당악에 쓰인다.

편경
편경

편경은 'ㄱ'자 모양의 경돌 16매를 음률의 순서에 따라 틀의 위아래 2단으로 나누어 8매씩 홍승으로 묶어놓고 암소뿔에 자루를 끼운 각퇴로 쳐서 소리를 낸다. 음고는 경돌의 두께에 따라 다르며 틀은 백아(흰기러기)로 고정했다. 또 봉두와 치미유소로 장식했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난다. 중국 고대 악기로 1116년(예종 11)에 유입되었다.

1425년(세종 7) 경기도 남양에서 경돌이 발견되고, 당시 아악을 정비하던 박연(朴堧)에 의해 율관이 제정되어 아악기의 제작이 본격화되자 주종소를 설치하여 편경을 직접 제작했다. 이전에는 중국에서 수입하여 사용했고 부실한 경은 기와로 만든 와경으로 대신했다. 1427년(세종 9) 악학별좌인 박연의 감독 아래 12매짜리 편경 1틀이 완성되었다. 이 편경은 중국 편경의 음률을 표준으로 삼아 삼분손익법에 의해 산출된 12율에 맞추어 제작되었다.

1428년(세종 10)까지 16매짜리 편경 33틀이 제작되어 여러 제향에 사용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편경은 박연이 정비한 율관에 의해 조율되었다. 세종 때 편경의 제작 등 아악기의 복원과 향악 창제 등 음악의 일대 부흥은 세종이 음악에 조예가 깊었고 적극적으로 후원했음을 알 수 있는 증거이다. 당시 세종은 박연이 편경을 시연할 때 그중 이칙의 음정이 맞지 않음을 지적했다. 박연이 살펴보니 과연 이칙음의 경 뒤에 먹줄이 남아 있어 먹줄을 갈아 바른 음정을 얻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