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페 4세

펠리페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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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605. 4. 8, 스페인 바야돌리드
사망 1665. 9. 17, 마드리드
국적 스페인·포르투갈

요약 그의 통치기는 스페인이 세계적인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점차 상실해가던 시기였다. 그의 통치 말기에 스페인의 국력은 전쟁에서의 패배와 사회적·경제적 불안으로 약화해 2등국으로 전락했다. 한편 펠리페는 시인이기도 했으며 예술의 후원자로 화가 벨라스케스의 친구이며 후원자였다. 벨라스케스는 펠리페와 왕실 인물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1621년 부왕인 펠리페 3세를 계승했다. 재위기간 초기의 22년 동안 펠리페의 총리는 올리바레스 공작이었는데, 그는 1609년에 체결된 12년 휴전협정이 끝나는 시점을 맞아 30년전쟁을 네덜란드와의 전쟁을 다시 시작하는 기회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신성 로마 제국의 합스부르크 왕조와 긴밀한 동맹을 맺어 유럽에서 스페인의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야심에 찬 시도를 위한 기회로 이용하려 했다. 몇번의 승리는 있었지만 1635년 프랑스가 전쟁을 선포하고 1640년 이후로 카탈루냐와 포르투갈의 분리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스페인이 거둔 초기 승리를 상쇄시켰다. 펠리페는 1643년 올리바레스를 해임하고 대신 돈 루이스 멘데스 드 아로를 임명했고 그는 1661년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그의 통치기는 스페인이 세계적인 강국으로서의 지위를 점차 상실해가던 시기였다. 1621년 부왕인 펠리페 3세를 계승했다. 재위기간 초기의 22년 동안 펠리페의 총리는 올리바레스 공작이었는데, 그는 1609년에 체결된 12년 휴전협정이 끝나는 시점을 맞아(1621) 30년전쟁을 네덜란드와의 전쟁을 다시 시작하는 기회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 신성 로마 제국의 합스부르크 왕조와 긴밀한 동맹을 맺어 유럽에서 스페인의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야심에 찬 시도를 위한 기회로 이용하려 했다.

스페인군은 몇 차례 눈에 띄는 승리를 거두었다. 즉 네덜란드에서는 브레다를 점령했고(1626), 뇌르틀링겐에서는 스웨덴과 바이마르를 무찔렀다(1634). 그러나 1635년 프랑스가 전쟁을 선포하고 1640년 이후로 카탈루냐와 포르투갈의 분리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스페인이 거둔 초기 승리를 상쇄시켰다(포르투갈은 1640년 브라간사 왕가의 주앙 4세 치하에서 독립했음). 펠리페는 1643년 올리바레스를 해임하고 대신 돈 루이스 멘데스 드 아로를 임명했고 그는 1661년 죽을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 1661년 이후 펠리페는 총리를 임명하지 않고 종종 수녀이며 신비주의자인 마리아 데 아그레다의 조언에 의지하여 그녀에게 신앙문제와 나라의 일을 의논했다. 통치 말기에 스페인의 국력은 전쟁에서의 패배와 사회적·경제적 불안으로 약화해 2등국으로 전락했다. 펠리페의 첫번째 아내는 프랑스 왕 앙리 4세의 딸 엘리자베트(스페인어로는 이사벨)였다. 1644년 그녀가 죽은 뒤 신성 로마 황제 페르디난트 3세의 딸 마리아 안나(마리아나)와 결혼했다. 펠리페는 시인이기도 했으며 예술의 후원자로 화가 벨라스케스의 친구이며 후원자였다. 벨라스케스는 펠리페와 왕실 인물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