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터

페이터

다른 표기 언어 Walter (Horatio) P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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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39. 8. 4, 런던 섀드웰
사망 1894. 7. 30, 옥스퍼드
국적 영국

요약 영국의 비평가·수필가·인문주의자.

페이터(Walter (Horatio) Pater)
페이터(Walter (Horatio) Pater)

그가 주창한 '예술을 위한 예술' 옹호론은 심미주의로 알려진 운동의 원칙이 되었다.

페이터는 캔터베리의 킹스 스쿨과 옥스퍼드대학교의 퀸스 칼리지에서 공부했으며, 퀸스 칼리지에서는 벤저민 조윗 밑에서 그리스 철학을 배웠다. 그후 옥스퍼드대학교에 머물며 자신의 문하생들과 함께 연구활동을 했고, 1864년에는 브레이스노스대학의 펠로로 뽑혔다. 이무렵 고전에 대한 열정적인 관심 때문에 목사가 되고자 했던 어린시절의 생각이 점차 흐려졌다.

그후 페이터는 평론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 산드로 보티첼리, 피코 델라 미란돌라, 미켈란젤로 및 그밖의 인물에 관한 평론을 모아 1873년 〈르네상스 역사에 관한 연구 Studies in the History of the Renaissance〉(후에 〈르네상스 The Renaissance〉로 불렸음)를 출판했다. 이 수필들에 나타난 섬세하고 꼼꼼한 문체와 르네상스 예술에 대한 감각적인 평가로 그는 학자이자 심미주의자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옥스퍼드대학교에는 그를 숭배하는 소규모 집단까지 생겼다. 그는 〈르네상스〉의 맺음말에서 예술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만을 위해 존재하며, 예술의 존재 이유에 도덕적 기준이나 실용적인 기능이 끼여들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견해 때문에 페이터는 찰스 스윈번이나 라파엘 전파 화가들과 연관되기도 했다.

〈쾌락주의자 마리우스 Marius the Epicurean〉(1885)는 그의 사상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이다. 이 글은 철학적인 로맨스로, 심미적이면서 종교적인 삶에 대한 페이터의 이상이 정확하고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 글의 배경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의 로마이지만, 이것은 19세기 후반의 특성을 나타내는 주인공의 정신적 발달사를 그리기 위해 위장한 것일 뿐이다. 〈상상의 초상화 Imaginary Portraits〉(1887)의 양식 역시 이와 똑같지만 길이가 짧은 철학 소설을 모아놓은 것이다. 〈감상 Appreciations〉(1889)에서는 다시 비평으로 돌아가, 이번에는 주로 영국적인 주제를 다루었다.

1893년의 〈플라톤과 플라톤주의 Plato and Platonism〉는 플라톤 철학의 논리적·변증법적 측면은 무시하고 철저히 문학적인 관점에서 그의 사상을 다루었다. 〈그리스 연구 Greek Studies〉(1895)·〈다방면에 걸친 연구 Miscellaneous Studies〉(1895)·〈'가디언'지에 실렸던 평론 모음 Essays from The Guardian〉은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으며, 미완성 로맨스 〈가스통 드 라투르 Gaston de Latour〉(1896) 또한 그의 유작이다.

페이터의 정신에 주된 영향을 끼친 것은 그의 고전연구였다. 그는 그리스도교적 경건함에 대한 극히 개인적인 견해를 고전연구에 그대로 적용했으며, 고전연구를 극히 세련된 예술적 감각의 근원으로 여겼다. 말년의 비평에서도 페이터는 도덕적·교육적 가치에 기초해 예술작품을 평가하는 당대의 일반적 경향과는 대조적으로 계속해서 예술작품 고유의 특질에 초점을 맞추었다. 초기에는 옥스퍼드대학교의 소집단에만 영향을 끼쳤으나, 점차 문단의 다음 세대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오스카 와일드, 조지 무어, 1890년대의 심미주의자들도 그의 추종자로서 그의 문체와 사상의 흔적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