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킨스

퍼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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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82. 4. 10, 보스턴
사망 1965. 5. 14, 뉴욕시
국적 미국

요약 미국의 정치가.
본명은 Fannie Coralie Perkins.

퍼킨스(Frances Perkins)
퍼킨스(Frances Perkins)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에 노동장관을 역임했다. 각료직에 오른 최초의 여성일 뿐만 아니라 루스벨트 시절에 가장 오랫동안 장관직에 있었다(1933~45). 퍼킨스가 노동장관으로 임명되자 재계와 정계의 일부 지도자들은 그러한 인사에 반대의사를 표시했으며 노동조합에서조차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삶의 대부분을 사회개혁에 바친 사회개혁가였다.

1902년 매사추세츠 주 사우스해들리에 있는 마운트홀요크대학을 졸업한 후 교직에 몸담으면서 교회 관련 사회사업을 했다. 잠깐 동안 시카고의 헐 하우스에서 제인 애덤스를 도와 일을 하기도 했으나 곧 필라델피아로 가서 이민 온 소녀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녀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밟다가 컬럼비아대학교로 옮겨가 1910년 이 대학에서 사회경제학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뒤 20년 동안 뉴욕에서 사회사업에 열정을 쏟았다. 1910~12년 뉴욕 소비자연맹의 사무총장으로서 여성 및 유년노동자의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 운동에 앞장섰다. 1912~17년에는 뉴욕 안전위원회의 사무총장직을 맡아 여성근로자의 주당 노동시간을 54시간으로 제한할 것을 주장하는 로비 활동을 벌였으며 이때 루스벨트와 알게 되었다.

뉴욕 전쟁지원조직위원회의 이사로 일한 뒤 뉴욕 주 산업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그뒤에는 산업부의 부원이 되었다. 1926년에는 이 기관의 부장이 되었고 1929년에는 루스벨트(당시 뉴욕 주지사)에 의해 주 산업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퍼킨스는 실업수당과 정부의 경제간섭을 주장하는 주요인물이 되었다.

루스벨트 정부의 노동장관이 된 퍼킨스는 최저임금제, 주당 최대 작업시간제, 16세 이하의 유년노동자 고용금지, 민간자원보존단, 실업수당 등을 주장했고, 이것은 법령으로 제정되었다. 그녀는 또한 사회보장법의 초안을 마련했고 1938년 근로기준법의 제정을 감독했다. 1930년대 후반 노동운동의 중심이 정부에서 노동조합으로 넘어가자 퍼킨스의 역할은 점점 더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당시 그녀가 가장 공을 들인 일은 노동부의 위상을 제고하는 것이었고 특히 노동통계국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루스벨트가 죽은 후 2개월 만에 각료직을 물러났지만 행정사무장으로 1953년까지 일했다. 그후 죽을 때까지 노동과 산업 문제에 대한 강연을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과의 교제를 기록한 책인 〈내가 아는 루스벨트 The Roosevelt I Knew〉가 1946년에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