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로나

팜플로나

다른 표기 언어 Pamplona
요약 테이블
위치 스페인 북동부 나바라 주, 아르가 강 서안
인구 195,650명 (2016 추계)
면적 23.55㎢
대륙 유럽
국가 스페인

요약 비옥한 라쿠엥카 지역을 흐르는 아르가 강 서안에 있다. 도시의 최초 이름은 폼페이오폴리스 또는 폼파일로였다. 중세에 이 도시의 중심부였던 라나바레리아에는 14~15세기에 걸쳐 지은 대성당이 우뚝 솟아 있다. 옛 시가지와 새 시가지를 연결하는 도시 중심부에는 카스티요 광장이 있다.
이 도시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1926)에서 묘사한 성 페르미누스 축제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축제는 성인의 축일 전날인 7월 6일에 시작하여 14일까지 계속되며, 아침마다 유명한 엔시에로(황소 우리) 근처에서 투우가 벌어진다. 황소들이 우리에서 몰려나와 거리를 질주하면 수많은 남자와 소년들이 재빨리 몸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친다. 스페인과 프랑스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팜플로나(Pamplona)
팜플로나(Pamplona)

스페인 북동부, 비옥한 라쿠엥카 지역을 흐르는 아르가 강 서안에 있다. 전설에 의하면 BC 7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정적 폼페이우스(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가 로마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퀸투스 세르토리우스를 정벌한 당시 군대 주둔지로 이 도시를 세웠다고 한다. 이 도시의 최초 이름은 폼페이오폴리스 또는 폼파일로였는데, 무어인이 이를 '반발루나'라고 불렀다.

무어인과 프랑크족의 침입 후 거의 폐기되었고, 778년에 프랑크의 샤를마뉴 왕에 의해 마지막으로 남은 방어시설이 철거되었다. 나바라의 산초 3세(1000~35)가 도시를 재건하여 나바라 대제국의 수도로 삼고 시우다드데라나바레리아라고 불렀다. 1512년에 가톨릭교도인 페르난도의 군대가 팜플로나에 들어왔고, 나바라 왕국의 피레네 산맥 남쪽 영토는 카스티야에 합병되었다. 1571년에 스페인 왕국의 펠리페 2세가 지은 성채로 인해 팜플로나는 스페인 북부에서 가장 튼튼한 방비태세를 갖춘 도시가 되었다. 제1차 카를로스 전쟁(1833~39)이 끝난 뒤인 1841년에 나바라 왕국의 수도였던 팜플로나는 새로 설정된 나바라 주의 주도가 되었다.

중세에 이 도시의 중심부였던 라나바레리아에는 14~15세기에 걸쳐 지은 대성당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이 성당은 대부분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되어 있지만 르네상스 양식의 흔적이 엿보이고, 정면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되어 있다. 오래된 지역인 산사투르니노에 있는 고딕 양식의 교회(13~14세기)도 유명하다. 그밖에 중요한 건물로는 카마라데콤프토스(1364경:왕실의 보물창고), 건물의 정면이 바로크 양식으로 된 종교재판소(1741), 나바라 문서보관소와 나란히 서 있는 주의회 의사당(신고전주의 양식) 등이 있다.

옛 시가지와 새 시가지를 연결하는 도시 중심부에는 기둥으로 떠받친 지붕이 있는 카스티요 광장이 있다. 많은 박물관과 고등교육기관이 있으며, 1952년에는 나바라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이 도시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 The Sun Also Rises〉(1926)에서 묘사한 성 페르미누스 축제(이 도시의 초대주교인 성 페르미누스 기념)로 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축제는 성인의 축일 전날인 7월 6일에 시작하여 14일까지 계속되며, 아침마다 유명한 엔시에로('황소 우리') 근처에서 투우가 벌어진다. 황소들이 우리에서 몰려나와 거리를 질주하면 수많은 남자와 소년들이 재빨리 몸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친다.

관개시설이 된 곡창지대인 이 도시는 농업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린다. 가죽술부대·샌들·밧줄·도자기를 만드는 전통 수공업과 주방용품, 알코올 음료, 종이, 화학제품의 제조업 및 제분업, 제당업이 함께 이루어진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도시 근교에 공장지대와 노동자들의 주거지역이 생겼다. 스페인과 프랑스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지도
팜플로나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