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렛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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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플렛(pamphlet)
팜플렛(pamphlet)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는 팜플렛을 "표지를 제외한 페이지(p) 수가 5~48p로, 정기간행물이 아닌 제본되지 않은 출판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인쇄술이 발명된 뒤에는 제본되지 않았거나 허름하게 제본된 작은 책자를 팜플렛이라 했는데, 당대 주요 화제에 관해 논쟁적인 선전글들의 형태로 유포되었기 때문에 '팜플렛'이라는 말은 이런 논쟁적인 선전물을 가리키는 것으로 쓰이게 되었다. 사서들과 서지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팜플렛을 종이표지로 제본되거나 제본되지 않은 얄팍한 책으로 분류한다. '트랙트'(tract)라는 낱말이 거의 같은 뜻으로 쓰이지만 이 말은 일반적으로 종교 간행물을 가리킨다.

초기 인쇄물 가운데 하나였던 팜플렛은 영국·프랑스·독일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16세기초 종교논쟁으로 팜플렛은 최초로 대대적인 붐을 이루어 활발하게 제작되었다. 프랑스에서는 개신교를 지지하는 팜플렛이 너무 많이 발행되자 1523, 1533, 1566년에 이것들을 금하는 칙령이 공포되었다. 독일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지도자들이 여론에 불을 붙여 교황과 로마 가톨릭 교회에 대항하도록 하기 위해 팜플렛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마르틴 루터는 팜플렛을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한 초기 발행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거칠면서도 강렬하다는 양면성과 뛰어난 파급효과로 팜플렛은 일반대중에게 널리 배포되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1589년 칙령에 따라 팜플렛은 배포가 금지되었다.

영국에서 팜플렛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에 크게 유행했는데, 종교적 논쟁에 쓰였을 뿐 아니라 토머스 데커, 토머스 내시, 로버트 그린 같은 사람들에 의해 로맨틱 소설, 자서전, 상스러운 인신공격, 사회와 문학 비판에도 사용되었다. 프랑스에서는 교훈적이고 독설적인 종교 팜플렛이 발행되었으나 차츰 법원과 종교지도자들의 도덕을 비꼬는 더욱 무례하고 신랄한 글로 바뀌었다.

〈지방 사람들 Les Provinciales〉로 유명한 파스칼은 팜플렛을 문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영국에서는 17세기에 정치적·종교적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선전적인 도구로서 팜플렛의 영향력이 크게 증대했다. 팜플렛은 영국의 청교도 혁명기간 및 그 전후의 여러 해에 걸쳐 청교도와 영국 국교회, 왕과 의회 사이에 벌어진 논쟁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1660년 영국의 왕정복고 때 팜플렛의 유통이 저지되었고, 이들의 범위도 신문과 정기간행물로 다소 제한을 받았다.

그러나 1688년 혁명 동안 팜플렛은 정치적 무기로 그 중요성을 더해갔다. 정당정치가 발전하면서 팜플렛 저자들은 차츰 정당에 소속되게 되었는데 당시 유명한 팜플렛 저자들 가운데는 조지프 애디슨, 리처드 스틸, 매슈 프라이어, 프랜시스 애터베리, 조너선 스위프트 같은 작가들이 있었다.

팜플렛은 18세기에도 줄곧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독립전쟁 전 북아메리카에서는 정치불안에 자극 받아 팜플렛이 폭넓게 발행되기 시작했다. 정치적 팜플렛 작가의 선두주자는 토머스 페인으로 그의 〈상식론 Common Sense〉이 1776년 1월에 발행되었다. 미국이 건립된 뒤 1787년 새 헌법의 제정을 둘러싸고 다시 한번 팜플렛 발행 붐이 일었다. 당시의 팜플렛 가운데 〈페더럴리스트 페이퍼 The Federalist Papers〉를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꼽을 수 있는데, 이것은 혁명적 팜플렛 집필자들인 알렉산더 해밀턴, 존 제이, 제임스 매디슨이 연방정부 형태에 관한 토의를 기고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 〈페더럴리스트 페이퍼〉는 정치 팜플렛 시대의 끝을 알리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뒤로 정치적 논쟁이나 대담은 주로 신문·정기간행물·단행본 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팜플렛 저자로는 볼테르, 장 자크 루소, 몽테스키외, 드니즈 디드로를 꼽을 수 있는데, 팜플렛을 이용하여 계몽주의 철학을 설파했다. 팜플렛은 조리 있는 논문이었지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다시 강력한 논쟁의 무기가 되었다.

혁명으로 왕비나 귀족 및 기타 여러 사건들을 비방하는 작자 미상의 팜플렛이 대량 배포되었고, 이런 팜플렛은 매우 인기 있었다. 파리에 있는 국립도서관에는 프랑스 혁명 기간의 팜플렛이 거의 완전하게 소장되어 있다. 혁명은 또한 매우 뛰어난 영어 팜플렛 가운데 하나인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고찰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1790)이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

이 글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이에 답하는 여러 글이 나오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토머스 페인의 〈인간의 권리 Rights of Man〉(1791~92)이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폴 루이 쿠리에가 팜플렛에 논쟁적인 걸작을 썼다. 영국에서 팜플렛은 19세기의 모든 정치운동에 한몫을 단단히 했다. 당시 유명 팜플렛들이 다룬 대표적인 정치운동으로는 인민헌장운동, 아일랜드 자치운동, 옥스퍼드 운동 등이 있다. 세기가 바뀌면서 페이비언 협회원들인 조지 버나드 쇼, 비어트리스 웨브, 그레이엄 월리스가 잇따라 나온 팜플렛에서 정치 신조를 피력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팜플렛은 주로 정부부처와 학술협회에서 논쟁보다는 정보 전달을 위해 많이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