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켄하인

팔켄하인

다른 표기 언어 Erich (Georg Anton Sebastian) von Falkenha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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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61. 11. 11, 서프로이센 그라우덴츠 근처
사망 1922. 4. 8, 독일 포츠담 근처
국적 독일

요약 독일의 군인.

프로이센의 육군장관과 제1차 세계대전초 독일 제국 참모총장을 지냈다.

중국 군대의 교관과 1900년 중국 의화단 사건 때 국제원정군 프로이센 참모부의 일원으로서 군사경력을 쌓았다. 1913년 7월부터 1915년 1월까지 프로이센 육군장관을 지내면서 독일군의 무장과 장비를 책임졌다. 그는 참모총장 헬무트 폰 몰트케 장군의 건의를 무시했는데 몰트케는 1914년 독일군이 프랑스에서 패한 것이 바로 팔켄하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914년 9월 14일 독일이 마른에서 후퇴한 뒤 빌헬름 2세는 몰트케의 후임으로 그를 임명했다. 그는 독일이 적에 대해 주로 방어적이고 소모적인 전략을 펼침으로써 프랑스에서 반드시 승리를 거둘 것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러시아를 패배시키는 데에는 별 관심을 기울인 것 같지 않다. 이때문에 그는 육군 원수 파울 폰 힌덴부르크와 에리히 루덴도르프 장군의 동부전선 공격안에 반대하고, 황제가 1915년 2월 7일 공격개시를 허용한 뒤에도 적절한 증원부대를 보내주지 않았다. 독일 내에서 철도에 의한 군대수송과 군수품 공급체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1916년 8월 29일 프랑스의 요새도시 베르됭에 대한 독일의 공격이 장기화되고 실패함에 따라 황제는 그를 참모총장직에서 해임시켰다. 그 후임으로 보다 호전적인 힌덴부르크가 발탁되었다. 약 10개월 동안 루마니아에 맞선 독일군을 이끈 뒤 팔레스타인의 중유럽 제국 군대(주로 투르크군)를 지휘했다(1917. 7. 9). 이곳에서 그는 에드먼드 앨런비가 이끄는 영국군의 진격을 저지할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에서 오토 리만 폰 잔더스 장군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고 1918년 3월 4일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리투아니아에서 군대를 지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