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랑헤당

팔랑헤당

다른 표기 언어 Falange

요약 스페인의 극단적인 민족주의 정치단체.
정식 명칭은 Falange Espa대체이미지ola, Falange Espa대체이미지ola Tradicionalista y de Las Juntas de Ofensiva Nacional Sindicalista(1937~77).

1933년에 창설된 이 단체는 이전의 독재자 미구엘 프리모 데 리베라의 아들인 호세 안토니오 프리모 데 리베라가 세운 것이다. 이탈리아 파시즘의 영향을 받은 팔랑헤당은 '훈다스 데 오펜시바 나시오날 신디칼리스타'라고 하는 단체와 1934년 2월에 세력을 합쳤으며, 공화정·정당정치·자본주의·마르크스주의·교권주의 등을 거부하고 국가조합주의적 국가, 강력한 정부와 군대, 스페인의 제국주의적 팽창 등의 필요성을 선언한 27개 조항의 선언서를 발표했다.

가두행진과 시끄러운 성명 발표에도 불구하고 처음 3년 동안은 거의 진전이 없었다. 인민전선이 집권한 1936년 2월 선거에서 우파가 총 18만 표 이상을 획득한 데 비해 팔랑헤당은 마드리드에서 겨우 5,000표를 얻었으며, 팔랑헤당 소속의 유일한 의회 의원이었던 프리모 데 리베라 자신도 낙선했다.

인민전선의 집권과 동시에 발생하기 시작한 스페인 정계의 급격한 양극화 현상은 우파 보수주의와 가톨릭 세력이 팔랑헤당을 지원하게 만듦으로써 점차 팔랑헤당의 인기를 높여주었다. 1936년 7월 스페인 공화국에 맞서는 군사폭동이 발생했을 때 프리모 데 리베라를 포함한 팔랑헤당의 일부 주요지도자들이 체포되어, 공화국 군대에 의해 총살되었다. 그러나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은 자기가 이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정당적 요소와 명백한 이데올로기를 팔랑헤당에서 찾아냈다. 실제로 팔랑헤당은 민족주의 운동 내에 전통적·교권주의적·왕당파적 요소를 함께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1937년 4월 19일자 포고령에 따라 팔랑헤 당원, 카를로스주의자, 그리고 그밖의 우익 파벌들을 강제로 '팔랑헤 에스파뇰라 트라디시오날리스타 이 데 라스 훈타스 데 오펜시바 나시오날 신디칼리스타' 또는 짧게 줄여서 '팔랑헤'라고 하는 하나의 단체로 통합했기 때문이다. 프랑코 장군이 팔랑헤당의 절대적인 지배자가 되었으며, 그의 처남인 라몬 세라노 수녜르가 팔랑헤당의 최고 대변인직을 맡았다. 팔랑헤당의 당원수는 1937년 프랑코가 팔랑헤당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했을 때 25만 명 이상으로 증가되어 있었으며, 15만 명 이상의 팔랑헤주의자들이 내전 기간 동안 프랑코의 군대에서 복무했다.

1939년 민족주의자들의 승리로 전쟁이 종결된 후 팔랑헤당의 과격한 파시스트 이념은 프랑코 정권의 보수주의적·전통주의적인 가치관으로 대체되었다. 팔랑헤 당원의 정계 진출은 불가피한 것이었으나 프랑코 정부가 통치했던 1940년대말과 1950년대 동안 팔랑헤당은 서서히 원래의 팔랑헤적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하게 되었다. 프랑코가 죽기 전인 1975년 1월 12일에 다른 '정치연합'의 설립을 허용하는 법률이 통과되었다.

그 이후, 특히 11월에 프랑코가 죽은 후 다른 정당들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당시 팔랑헤는 거의 활동을 중단한 상태였고, 결국 1977년 4월 1일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