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관회

팔관회

다른 표기 언어 八關會

요약 〈삼국사기〉에 의하면 팔관회는 551년 처음 행해졌다. 신라 때 팔관회는 호국적 성격이 짙으며, 10월과 11월에 행해져서 종래 제천의식과 불교가 결합되어 행해진 의식인 듯하다.
고려시대에도 연등회와 함께 국가의 2대 의식의 하나로 중요시되었다. 이때의 팔관회는 천령·오악·명산·대천·용신 등 토속신에게 지내는 의식과 같았다. 팔관회는 개경과 서경에서만 행해졌다.
외국 사신들의 인사를 받기도 하고 개경의 팔관회를 이용하여 무역도 이루어졌다. 팔관회는 고려 초기에 성하다가 현종 이후부터 점차 쇠퇴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배불정책에 따라 철폐되었다.

팔관회
팔관회

〈삼국사기〉에 의하면 팔관회는 551년(진흥왕 12) 처음 행해진 이래 4차례의 기록이 보인다. 신라 때 행해진 팔관회는 모두 호국적인 성격이 짙으며, 10월과 11월에 행해진 것으로 보아 종래 제천의식과 불교가 결합되어 행해진 의식인 듯하다.

고려시대에도 유교가 성하던 성종대를 제외하고는 연등회와 함께 국가의 2대 의식의 하나로 중요시되었다. 이때의 팔관회는 불교적인 색채를 거의 띠지 않아 천령(天靈)·오악·명산(名山)·대천·용신 등 토속신에게 지내는 의식과 같았다.

팔관회는 개경과 서경에서만 행해졌는데 개경에서는 11월 15일에, 서경에서는 10월 15일에 열렸다.

개경에서 행하는 팔관회 의식에는 행사 전날에 행하는 소회일(小會日)과 행사 당일에 하는 대회일(大會日)이 있다. 소회일에는 왕이 불법을 통해 호국을 염원하기 위해서 법왕사(法王寺)에 가는 것이 보통이었고, 때에 따라 위봉루(威鳳樓) 또는 신봉루 등에서 여러 신하들의 축하인사를 받거나 군신간의 헌수(獻壽), 그리고 지방 수령들의 선물 봉정식이 있었다. 대회일에도 축하와 헌수를 받았으며, 외국 사신들의 인사를 받기도 하고 개경의 팔관회를 이용하여 무역도 이루어졌다. 서경의 팔관회는 조상제의 성격을 띤 예조제(藝祖祭)로서 정부에서는 보통 재상을 파견하여 재제(齋祭)를 행했다.

팔관회는 고려 초기에 성하다가 현종 이후부터 점차 쇠퇴했다. 그러나 고려말까지 국가 최고의 의식으로 행해졌으며, 몽골 침입으로 강화도에 천도한 시기에도 이 의식이 행해졌다. 그러나 조선이 건국되면서 배불정책에 따라 철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