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먼

파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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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23. 9. 16, 미국 보스턴
사망 1893. 11. 8, 매사추세츠 자메이카플레인
국적 미국

요약 미국의 역사가.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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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2. 초기활동
  3. 저술활동

개요

고전적인 역사 총서인 〈북아메리카에서의 영국과 프랑스 England and France in North America〉로 유명하다.

7권의 연작인 이 총서는 초기부터 1763년까지의 식민지시대를 다루고 있다.

초기활동

보스턴의 지도적인 유니테리언파 목사인 프랜시스 파크먼의 아들로 태어났다.

소년시절에 아버지의 문학가 친구들을 만났고 집안의 서재에서 많은 책을 읽었다. 하버드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로 보스턴에 있는 션시플레이스 학교에서 그리스어·라틴어·수학을 공부했고 여름에는 메드퍼드 근처에 있는 할아버지 농장에서 지냈다. 대학시절에 파크먼은 언어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모국어인 영어로 된 책만큼 많은 외국어 원서를 읽었다. 그는 위대한 고대 역사가와 니콜로 마키아벨리와 같은 이탈리아 작가의 저서를 원전으로 읽었고, 프랑스의 주요 문학작품과 역사책을 탐독했다.

옛 기록을 진지하게 연구하면서 하버드대학교의 스승인 저명한 역사가 제어리드 스파크스의 영향을 받았는데, 모험과 탐험에 빠졌던 스파크스는 파크먼과 같이 감수성있는 학부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지적 형성기에 파크먼은 스승과 책의 도움으로 사고를 형성했으나 편지와 일기에서 지적했듯이 직접 관찰을 통해 자료를 모았다. 대학시절 뉴잉글랜드와 캐나다 남동부에 이르는 산림지를 열성적으로 탐사해 동행한 친구들을 지치게 했다. 그러나 위스키 파티 등에도 참석하고 기숙사에서 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인디언 전쟁놀이도 하는 등 다른 학생과 같은 평범한 생활을 했고, 예쁜 소녀와 말을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학 4학년 때 건강이 나빠진 뒤 1844년 유럽을 널리 여행했다. 그는 특히 로마 가톨릭 교회에 관심을 가져 로마에 있는 수도원에 잠시 들어가기도 할 만큼 로마 가톨릭 교회를 치밀하게 연구했다. 이듬해에는 아메리카 북서부에 있는 사적지를 여행했고 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해 하버드대학교에서 법학학위를 받았다. 1846년 여름 대평원에 대한 여행을 시작해 포트래러미에 이르는 오리건 통로의 일부를 탐사했다.

저술활동

파크먼의 본격적인 저술활동은 서부로 돌아온 뒤에 시작되었다.

잦은 병치레와 부분적인 시력상실에도 불구하고 그는 〈니커보커 매거진 Knickerbocker Magazine〉에 오리건 통로 여행기를 연재물로 기고했다. 이 여행기는 1849년 〈캘리포니아와 오리건 통로 The California and Oregon Trail〉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는데, 사실 이 책의 이름은 파크먼이 캘리포니아 근처의 어느 곳도 탐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었다. 그는 책을 더 많이 팔기 위해 캘리포니아라는 이름을 넣은 '출판업자의 속임수'를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이후 〈오리건 통로:대평원과 로키 산맥의 생활에 대한 소묘 The Oregon Trail;Sketches of Prairie and Rocky-Mountain Life〉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판된 이 책은 19세기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오리건 통로〉는 보스턴뿐만 아니라 변경지를 소재 해서도 능숙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새로운 작가가 출현했음을 보여주는 저서였다.

〈폰티악 음모의 역사 History of the Conspiracy of Pontiac〉는 그가 캐서린 스콜라이 비걸로와 결혼하기 직전인 1851년에 완성되었다. 이 책은 그의 첫번째 역사서로서, 위대한 오타와 추장 폰티악의 '음모'와 1763년 인디언 전쟁으로 절정에 이른 북아메리카에서의 영국-프랑스 대결의 역사와 인디언의 정세를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어린 아들의 죽음(1857)과 아내의 죽음(1858)을 겪고 자신도 여러 병을 앓는 '암흑기'로,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그는 우울과 반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심장병, 불면증, 심한 두통, 반(半)실명상태, 슬관절 수종(水腫), 나중에는 관절염과 류머티즘에 이르기까지 여러 병을 얻게 되었는데 그가 앓았던 병들은 노이로제에서 비롯된 것 같다. 자신의 병을 '적'으로 부른 파크먼은 엄청난 긴장상태를 극복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해야만 했다.

미국 남북전쟁이 끝났을 때 파크먼은 어느 정도 '적'을 이겼고 〈신대륙에서의 프랑스 개척자 Pioneers of France in the New World〉를 완성했다.

이 책은 프랑스의 북아메리카 황무지 침투를 생생하게 묘사한 것으로 나중에 그의 역사총서가 나올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주었다. 남북전쟁 동안 그는 언론에 호전적이고 애국적인 글을 발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전후 27년 동안 〈신대륙에서의 프랑스 개척자〉에 이은 6권의 역사저서를 집필함으로써 면밀한 역사총서를 완성했다. 〈17세기 북아메리카의 예수회 The Jesuits in North America in the Seventeenth Century〉(1867)는 영향력있는 저서로서, 휴런족에게 행한 예수회의 선교사업이 이로쿼이족의 계속된 공격을 받음으로써 파괴되어가는 비극적 과정을 그리고 있다.

〈라 살과 대서부의 발견 La Salle and the Discovery of the Great West〉은 많은 점에서 영어로 된 전기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히는데, 이 책은 1869년 〈대서부의 발견 The Discovery of the Great West〉으로 처음 발간되었다가 프랑스 자료 입수 뒤에 개정한 것이다. 진로에서 부딪치는 거의 모든 장애를 극복한 강하고 용감한 인물이었던 라 살은 파크먼의 글 속에서 영웅으로 묘사되었다. 〈프롱트나크 백작과 루이 14세 치하의 뉴프랑스 Count Frontenac and New France Under Louis ⅩⅣ〉(1877)는 자만심·용기·대담성을 가진 강력한 통치자 치하에서의 뉴프랑스(프랑스인의 초기 캐나다 정착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기라고 할 수 있는 저서는 〈몽칼름과 울프 Montcalm and Wolfe〉(1884)이다. 이 책은 1759년 퀘벡 전투에서 함께 전사한 프랑스 장군 몽칼름 후작과 영국 장군 제임스 울프의 전기로서, 파크먼은 이 책에서 최고의 인물묘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전기작품이 시대정신을 얼마나 훌륭하게 반영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캐나다의 구체제 The Old Régime in Canada〉(1874)는 뉴프랑스의 초기와 중기 시대를 광범하게 개관한 사회사의 선구적 저서로서 다른 책 못지않은 관심을 끌었다. 파크먼의 문학적 예술성이 가장 잘 나타난 저서는 죽기 직전에 완성된 〈갈등의 반세기 Half-Century of Conflict〉이다.

역사총서 〈북아메리카에서의 영국과 프랑스〉의 마지막인 이 책은 프렌치인디언 전쟁의 실마리가 된 사건을 흥미진진하지만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