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발

파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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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조선시대에 공문서를 전달하던 통신수단.

조선은 본래 군사 통신제도로서 봉수제를 갖추고 있었으나, 임진왜란을 치르면서 파발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1597년(선조 30)에 이를 설치하게 되었다.

파발에는 말을 타고 연락하는 기발과 사람이 속보로 걸어서 연락하는 보발이 있었다. 이중 기발은 25리마다 참을 설치하고 매참에 발장 1명, 색리 1명, 파발군 5명, 말 5필을 두었다. 보발은 30리마다 참을 두고 발장 1명과 파발군 2명을 배치했다.

파발은 서울에서 의주에 이르는 서발, 서울에서 경흥까지의 북발, 서울에서 동래에 이르는 남발 등 3대로를 중심으로 정비되었다. 참의 설치 수는 〈만기요람〉에 따르면 서발에는 직로에 38참(경기 7참, 황해도 13참, 평안도 18참)을 두고 사잇길에 48참(평산에서 해주까지 5참, 박천에서 압록강변 여러 고을까지 43참)을 두었다. 북발에는 직로에 64참(경기도 3참, 강원도 6참, 함경도 55참), 사잇길에 10참(북청에서 삼수까지 10참)을 두었다. 남발은 직로에 34참(경기 9참, 충청도 5참, 경상도 20참)을 두었다.

서발·북발·남발 중 서발의 직로만이 기발이고 나머지는 모두 보발이었다. 파발은 일의 완급을 나타내는 방울을 달아 전송했는데, 방울 셋을 단 3현령은 긴급사태를 의미했다. 보통은 하나를 달고, 이보다 급한 일은 2개를 달았다.

통일로 파발제 길놀이
통일로 파발제 길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