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

다른 표기 언어 Parthenon

요약 BC 5세기에 세워졌으며 도리아식 오더가 최고로 발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파르테논이라는 이름은 이 신전과 관련이 있는 아테나 파르테노스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BC 447년 공사가 시작되었고 건물 자체는 BC 438년에 완성되었다. 흰 대리석으로 지은 직4각형의 파르테논 신전의 기본구조는 원상태로 남아 있다.
그리스도교 사원으로 바뀐 5세기까지는 본질적 원형을 유지했다.1458년 아테네를 점령한 투르크인들은 귀퉁이 첨탑 이외에는 변화 없이 모스크로 사용되었다.
남아 있던 조각품 대부분이 1816년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팔리고 나머지 다른 조각들은 루브르, 코펜하겐 박물관 등에 있으나 아직도 많은 수가 아테네에 있다.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

BC 5세기 중엽에 세워졌으며 일반적으로 그리스 건축의 3가지 오더 중 가장 단순한 도리아식 오더가 최고로 발전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파르테논이라는 이름은 이 신전과 관련이 있는 아테나 파르테노스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아테네의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지시를 받아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감독을 받아 건축가 익티노스칼리크라테스가 지었다. BC 447년 공사가 시작되었고 건물 자체는 BC 438년에 완성되었다.

같은 해 페이디아스가 내부에 놓기 위해 금과 상아로 만든 아테나 여신상을 바쳤다. 건물 외부장식 작업은 BC 432년까지 계속되었다. 흰 대리석으로 지은 직4각형의 파르테논 신전은 수세기 동안 대부분의 조각품을 잃어버리는 등 크게 손상되었지만 기본구조는 원상태로 남아 있다. 주초(柱礎) 없이 네모난 주두(柱頭)를 가진 기둥이 3단의 기단 위에 늘어선 콜로네이드[列柱]가 지붕에 해당하는 엔타블레이처를 떠받치고 있다. 엔타블레이처는 단순한 석재 띠인 아키트레이브와 그 위에 트리글리프(3줄의 세로홈 장식부분)와 메토프(부조가 새겨진 판, 부조는 부분적으로 제거됨)가 번갈아 늘어선 프리즈 부분, 그리고 동쪽과 서쪽에 있는 나지막한 3각형 박공(이 부분의 부조 역시 거의 제거되었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서로 각각 8개, 남북으로는 17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이 콜로네이드는 벽으로 구획된 4각형 방인 켈라를 에워싸고 있다. 원래 이 켈라는 2줄의 작은 도리아식 콜로네이드에 의해 3개의 복도로 나누어져 있었고 이 콜로네이드가 서쪽 끝에 있는 거대한 신상 뒤를 감싸고 있었다.

채광은 동쪽 출입구를 통해서만 가능했으나 천장과 지붕의 대리석 사이로 약간의 빛이 들어왔을 수도 있다. 켈라 뒤에는 서쪽으로 입구를 낸 좀더 작은 4각형 방이 있으며 원래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이 내부 구조의 동쪽·서쪽 끝은 각각 6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는 포티코(현관)로 이어진다. 기단의 맨 위층에서 잰 건물 높이는 30.89m이며 너비는 69.5m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고도의 건축적 치밀함을 보여주는데, 이들이 서로 어우러져 조형적이고 조소적인 외관을 부여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우선 기단이 끝으로 갈수록 위쪽으로 굽어 있는데, 엔타블레이처에서도 이 방법이 쓰였다.

또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하게 위로 갈수록 기둥의 지름을 줄여 볼록하게 하는 엔타시스(배흘림)를 사용했다. 그리고 하늘을 배경으로 일정한 각도에서 보았을 때 네 귀퉁이의 기둥이 가늘어 보이는 현상을 상쇄하기 위해 이 기둥들을 좀더 굵게 만들었다. 파르테논 신전을 장식하고 있는 조각은 세심한 조화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건물 자체의 치밀함에 견줄 만하다. 바깥쪽 콜로네이드 위에 있는 메토프에는 고부조(高浮彫)가 새겨져 있는데 동쪽면에는 신과 거인, 남쪽면에는 그리스인과 켄타우로스, 서쪽에는 추측하건대 그리스인과 아마존인들과의 싸움 장면을 각각 나타냈다.

북쪽의 메토프는 거의 유실되었다. 켈라 벽 윗부분을 둘러싼 연속적인 저부조 프리즈는 아테나 여신을 기리는 판아테나이아 축제의 연례 시민행진을 표현하고 있는데, 양쪽으로 신들이 앉아 있고 아테나 신을 모시는 남녀사제가 새겨진 동쪽 면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박공부분에 환조 조각이 있는데, 동쪽면에는 아테나 여신의 탄생 장면을, 서쪽면에는 아테네 주변 지역의 지배를 위해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싸우는 장면을 나타낸다.

조각 작품 전체는 색채와 청동 장신구가 보태어져 더욱 명료해졌고 놀랄 만한 구도를 보여준다. 파르테논 신전은 페이디아스가 만든 거대한 조상이 철거되고 그리스도교 사원으로 바뀐 5세기까지는 본질적 원형을 유지했다. 7세기에 이르러 실내 일부가 개조되었다. 1458년 아테네를 점령한 투르크인들은 파르테논 신전의 남서쪽 귀퉁이에 미나레트(첨탑)를 세웠으나 그밖에는 변화 없이 그대로 모스크로 사용되었다.

1687년 투르크인과 싸우던 베네치아인들이 아크로폴리스를 포격하던 중 파르테논 신전 안에 있던 화약고가 폭발해 건물 중심부가 파괴되었다. 1801~03년에는 그때까지 남아 있던 조각품 대부분이 투르크의 허락을 받은 영국 귀족 토머스 엘진 경에 의해 철거되어 1816년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팔렸다. 나머지 다른 조각들은 루브르, 코펜하겐 박물관 등에 있으나 아직도 많은 수가 아테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