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롤럽

대중적인 성공의 그늘에 가려 사후에도 오랫동안 문학성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바셋셔라는 가공의 영국 지방을 배경으로 한 연작소설이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작품이다. 그는 정치소설이나 상당한 심리적 통찰이 필요한 학문적인 소설에도 재능을 보였다. 그가 지닌 가장 뛰어난 능력 중 하나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사회구조를 일관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작품 속에서 치밀하게 재현해낸 것이다.

트롤럽의 아버지는 학자이며 변호사였으나 몰락한 귀족 출신의 농민이었다.

트롤럽은 윈체스터와 해로의 큰 공립학교를 다녔으나 학교생활은 원만하지 못했다. 1834~41년에 중앙우체국에서 말단직원으로 근무하며 곤궁하게 지냈지만, 우편감독관으로 발령받아 아일랜드로 전근간 뒤부터는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1844년 그는 영국 태생인 로즈 헤젤틴과 결혼하여 티퍼래리에 있는 클론멜에 집을 구했다. 그후 다재다능하고 정력적인 작가라는 인상을 심어준 작품들을 쓰기 시작했다.

〈관리인 The Warden〉(1855)은 주목을 받은 첫번째 소설로, 자선기관을 운영하면서 돈벌이만 한다고 비난받는 한 양로원 관리인의 이야기를 다룬 통찰력있는 작품이다.

그후 12년 동안 트롤럽은 〈관리인〉과 마찬가지로 바셋셔 지방을 배경으로 한 5편의 소설 〈바체스터의 탑 Barchester Towers〉(1857)·〈의사 손 Doctor Thorne〉(1858)·〈프램리 목사관 Framley Parsonage〉(1861)·〈앨링턴의 작은 집 The Small House at Allington〉(1864)·〈바셋의 마지막 연대기 The Last Chronicle of Barset〉(1866~67 연재, 출판 1867)를 내놓았다.

〈바체스터의 탑〉은 이 5편의 소설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며, 〈의사 손〉은 혈통과 토지소유에 기초한 사회체제에 대한 가장 뛰어난 묘사이다. 〈바셋의 마지막 연대기〉는 가난한 교구의 부목사로서 봉급도 제대로 못 받은 채 고생하는 학구적인 인물 크롤리의 이야기로, 가장 감동적인 작품이다. 바셋셔를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들은 등장인물들이 특히 인상적이며, 교계와 지주귀족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1859년 런던으로 돌아가 1867년 공무원 직을 그만두고 이듬해 자유당 후보로 하원의원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그러나 그는 그 전에 이미 바셋셔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제외하고도 약 18편에 이르는 소설을 썼다. 그는 주로 아침을 먹기 전에 시간당 1,000단어씩 고정적으로 글을 써나갔다. 이 기간에 나온 작품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유언의 진위 여부를 놓고 분쟁이 일어난다는 진부한 줄거리의 〈올리 농장 Orley Farm〉(1861~62 연재, 출판 1862)과 그의 첫번째 정치소설로서 훗날 옴니엄 공작이 된 플랜태저넷 팰리저를 등장시킨 〈그녀를 용서할 수 있어요? Can You Forgive Her?〉(1864~65 연재, 출판 1865)이다.

특히 팰리저의 이야기는 결혼의 어려움과 위험성을 날카롭게 파헤친 〈공작의 아이들 The Duke's Children〉(1879~80 연재, 출판 1880)에 이르기까지 그뒤에 나온 여러 작품에서 계속 다루어졌다. 그의 정치소설은 정치이념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체제가 실제로 돌아가는 방식, 즉 권력의 메커니즘에 대한 것이었다.

1869년경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흥미롭다고 할 수 있는 작가로서의 마지막 단계가 시작되었다.

그가 새로운 양식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흔적은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다 He Knew He Was Right〉(1868~69 연재, 출판 1869)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무고한 아내에 대한 질투심에 사로잡힌 한 부자의 내면을 느린 내용전개 속에서 섬세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순전히 심리적인 묘사만 담겨져 있는 작품으로는 〈험블스웨이트의 해리 핫스퍼 경 Sir Harry Hotspur of Humblethwaite〉(1870 연재, 출판 1871)·〈어둠 속에서 Kept in the Dark〉(1882)가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몇몇 후기 작품은 풍자적이다. 〈유스타스의 다이아몬드 The Eustace Diamonds〉(1871~73 연재, 출판 1873)는 성적 관계에 대해 돈이 어떤 위력을 가지는지를 다룬 작품이고, 〈우리 생활방식 The Way We Live Now〉(1874~75 연재, 출판 1875)은 악역 주인공인 돈많은 자본가 멜모트로 유명하다.

〈스카버러 씨 가족 Mr. Scarborough's Family〉(1883, 사후출판)은 자신의 법적 권리를 지키기에만 여념이 없는 허무주의적 성향의 인간이 재산권을 행사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트롤럽은 말년에 대중의 인기도 잃고 건강도 나빠진 채 점점 심해지는 고독감 속에 서식스 주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그는 중풍에 시달리다가 런던에서 사망했다. C. P. 스노가 쓴 전기 〈트롤럽의 생애와 그의 예술 Trollope : His Life and Art〉(1975)은 그의 공직생활 경력과 소설가로서의 재능을 특히 밝혀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