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턴과 프린스턴 전투

트렌턴과 프린스턴 전투

다른 표기 언어 battles of Trenton and Princeton

요약 미국 독립전쟁 당시 조지 워싱턴 장군의 혁명군이 야전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전투(1776~77).

트렌턴과 프린스턴 전투(battles of Trenton and Princeton)
트렌턴과 프린스턴 전투(battles of Trenton and Princeton)

1776년 11월 맨해튼 섬의 워싱턴 요새를 함락시킨 영국군 장군 윌리엄 하우 경은 뉴저지를 지나 델라웨어 강 건너 펜실베이니아로 미국군을 몰아냈다. 그리고 나서 하우는 트렌턴에 독일 헤센 출신 요한 랄 대령과 1,400명의 병력을 남겨두고 겨울 진지로 갔다.

워싱턴의 대륙군은 그해의 패배로 사기가 저하되어 있기는 했지만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었고, 아직도 6,000명의 병력이 남아 있었다.

남아 있는 독일군들에게 사실상 보급이 끊겼음을 확신한 워싱턴은 이들을 사로잡기로 결정했다. 워싱턴은 12월 얼음이 떠다니는 델라웨어 강을 건너 기습공격을 감행해 다음날 900명 이상을 포로로 잡았고, 4일 뒤에는 트렌턴을 점령했다. 워싱턴의 이동에 대한 정보를 들은 콘월리스 경은 7,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1777년 1월 2일 이 도시의 동북부에서 대륙군과 교전하여 이들을 뒤로 밀어부쳤다. 탈출할 배를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워싱턴은 전시회의를 소집해 그날 밤 조용히 진지를 파괴하고 프린스턴으로 향하는 샛길을 택하는 대담한 계획을 주장했다. 이 전술은 성공했고, 1월 3일 그곳에서 맞닥뜨렸던 영국군 3개 군단은 모두 뒤로 물러서거나 철수했다. 그결과 워싱턴은 계속해서 뉴저지의 모리스타운까지 진격해 뉴욕으로 통하는 영국군의 병참선을 측면 공격했다. 콘월리스는 뉴브런즈윅으로 물러났다. 워싱턴은 하우의 전열을 완전히 돌파했을 뿐만 아니라 병력을 쉽게 충원할 수 있고 다음 전투에서 든든한 방어를 할 수 있는 유리한 지점을 차지하게 되었다.

독립전쟁 초기에 벌어진 트렌턴과 프리스턴 전투에서 미국이 거둔 승리의 영향은 두드러진 것이었다. 계속된 몇 번의 패전에 뒤이어 거둔 이 승리는 미국의 대의명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혁명군의 사령관으로서 워싱턴에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