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베

테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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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아테네 북서쪽, 보이오티아 동부에 있었다. 오이디푸스 왕의 전설이 서린 곳으로 고대 그리스 비극의 대부분과 오이디푸스, 그의 아내이자 어머니, 그의 자녀들의 운명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이곳을 무대로 하고 있다.
고대도시의 아크로폴리스 자리에 농산물시장과 상점가가 들어서는 등 현재는 보이오티아 주의 주요도시로 기반을 굳혔다. 주변의 평야를 가르는 낮은 산등성이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리스 정교회의 테베, 레바디아 주교가 있다. 그리스의 전설에 따르면 고대의 성채 카드메아는 에우로파의 오빠 카드모스가 지었고, 성벽은 암피온이 세웠다고 한다. 지금의 도시는 비옥한 평야지대의 교역 중심지로서 밀, 올리브유, 포도주 등을 취급한다. 아테네와 철도로 연결되며 유적으로는 성벽, 카드모스 궁, 이스메네이온 등의 잔해가 있다.

테베(Thebes)의 유적
테베(Thebes)의 유적

아테네 북서쪽, 보이오티아 동부에 있었다.

오이디푸스 왕의 전설이 서린 곳으로 고대 그리스 비극의 대부분과 오이디푸스, 그의 아내이자 어머니, 그의 자녀들의 운명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이곳을 무대로 하고 있다. 비극 중에서 아이스킬로스의 〈테베 공략 7장군 Seven Against Thebes〉과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Oedipus the King and Antigone〉가 유명하다. 고대도시의 아크로폴리스 자리에 농산물시장과 상점가가 들어서는 등 현재는 보이오티아 주의 주요도시로 기반을 굳혔다.

주변의 평야를 가르는 낮은 산등성이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리스 정교회의 테베·레바디아 주교가 있다.

그리스의 전설에 따르면 고대의 성채 카드메아는 에우로파의 오빠 카드모스가 지었고, 성벽은 암피온이 세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청동기시대 시작과 끝무렵에 사람이 살았다. 카드메아에 있는 BC 15세기에 지은 크레타 양식의 궁전에는 크레타식 옷을 입은 테베 여인을 그린 프레스코벽화가 있다.

몇몇 크레타 양식의 항아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BC 1450~1400년에 테베와 크노소스 사이에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64년 메소포타미아의 원통형 인장이 발견되어 카드모스가 그리스에 문자를 도입했다는 설이 유력해졌으며, 1970년 미케네와 크레타 사이에 교류가 있었음을 확증해주는 서판이 발견되었다.

테베는 트로이 전쟁(BC 1200경) 직전에 궁궐과 성벽이 파괴될 때까지 미케네의 권력중심지 자리를 놓고 아르골리스와 경쟁을 벌였다.

그 이후의 역사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드문데, 이민이 들어와 도리아인 계통의 에게인을 포함한 보이오티아 혼혈족이 생겨났으며 BC 725년경 제정된 법에 따라 넓은 지역에서 과두정치가 실시되었다. BC 6세기 보이오티아의 도시들은 동맹을 결성했고, BC 5세기부터 테베는 이 동맹을 이끌었다. 플라타이아 지역에 대한 이권을 놓고 아테네와 적대관계에 있던 테베는 BC 5세기 페르시아와 동맹을 맺고 나중에 스파르타와 협력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날 무렵인 BC 404년 테베는 스파르타에게 아테네를 공격해달라고 제의했으나 단번에 거절당했다. 테베와 스파르타는 전쟁에 들어갔고, 이 전쟁에서 이긴 스파르타는 BC 386년 보이오티아 동맹을 해체하고 BC 382년 카드메아를 점령했다.

BC 379년 이후 반란을 일으킨 테베는 민주적 원칙에 따라 동맹을 다시 결성하고 스파르타를 정복하기 위해 BC 375년 테기라로, BC 371년 레우크트라로 출정했다.

그뒤 10년간 테베는 그리스 최강의 군사력을 갖고 있었으나, 사령관 에파미논다스가 펠로폰네소스 정벌(BC 370~362)에 나섰다가 BC 362년 만티네이아 전투에서 죽은 후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BC 346년 내란이 일어나 테베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를 왕으로 맞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계속 변동을 겪던 테베는 필리포스 2세와의 신뢰관계를 끊었다가 BC 338년 카이로네아 전투에서 패배했다.

동맹은 다시 해체되었고 테베에는 마케도니아 군대가 주둔했다. BC 336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반대하는 봉기가 일어났으나 주민들이 대량학살되고 도시의 거의 전부가 파괴되었을 뿐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다. 도시는 BC 316년 카산드로스에 의해 재건되었고, BC 197년 로마 제국 밑에 들어갔으나 BC 86년 로마 제국의 술라 장군에 의해 다시 해체되었다.

2세기의 역사가 파우사니아스는 카드메아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고 썼다.

중세에는 정복자와 모험가들에게 끊임없이 점령당했다. 투르크 점령기(1435~1829)에는 가난한 마을이었을 뿐이었고, 19세기에 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재건되기도 했다. 지금의 도시는 비옥한 평야지대의 교역 중심지로서 밀·올리브유·포도주·담배·목화·견직물을 취급한다. 철도로 아테네와 연결되며 얼마 남지 않은 유적으로는 성벽, 카드모스 궁(BC 1450경~1350), 이스메네이온(아폴론 이스메니오스의 신전) 등의 잔해가 있다. 인구 18,191(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