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그 바하두르

테그 바하두르

다른 표기 언어 Tegh Bahadur
요약 테이블
출생 1621(?), 인도 펀자브 암리차르
사망 1675. 11. 11, 델리
국적 시크교

요약 시크교의 제9대 구루이자 2번째 순교자.

그의 순교는 자신의 종교가 아니라 타 종교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어린이 구루'로 유명했던 제8대 구루 하리 크리셴은 바칼라 마을에서 자신의 후계자를 찾으라고 유언했다.

그러나 시크교의 대표들은 그곳에서 후계자로 추정 가능한 인물을 22명이나 발견했다. 시크교도로서 부유한 상인이었던 바이 마칸 샤는, 그중에서 테그 바하두르만이 다른 21명과 달리 탐욕과 자기 과시를 전혀 드러내지 않음을 발견하고 즉석에서 그를 제9대 구루로 추대했다. 제9대 구루가 된 테그 바하두르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라는 아우랑제브 황제의 명령을 받은 카슈미르 출신의 힌두교 성자 몇 명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등의 도움을 줌으로써 무굴 제국 정부와 충돌하게 되었다. 그 힌두교 성자들은, 테그 바하두르가 이슬람교를 받아들인다면 자신들도 그렇게 하겠다는 전갈을 황제에게 보냈다. 곧 테그 바하두르는 체포되어 델리의 요새에 감금되었다. 테그 바하두르를 질시하던 몇몇 신하들은 그를 더욱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그가 세속적 욕망을 지니고 감옥의 서쪽에 있는 황제의 후궁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다고 고소했다. 테그 바하두르는 이러한 비난을 받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황제여, 나는 황후의 처소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소. 나는 그대의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서해를 건너 오고 있는 유럽인들 쪽을 바라보고 있었소."

아우랑제브는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여 테그 바하두르에게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든가 기적을 일으키든가 하라고 명했다. 테그 바하두르는 그 모두를 거부하고 시크교의 가장 중요한 경전인 〈자프지 Japjῑ〉를 암송했으며, 곧 처형되었다. 한 충실한 시크교도가 테그 바하두르의 머리를 아난드푸르로 가져갔으며 구르드와라 라카브군지는 그의 순교 장소를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