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

탈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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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미슈나〉는 유대 구전 율법들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법전으로, 3세기초 유다 하 나시가 완성했다. 유대교의 두 학파인 팔레스타인 학파와 바빌로니아 학파는 각각 독자적인 〈탈무드〉를 만들어냈다. 〈팔레스타인 탈무드〉는 약 2세기 동안 작업하여 400년경 완성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늦게 완성된 만큼 방대하며, 그런 이유로 더 높이 평가받는다.
고대 학교들은 구전으로 학문을 전수했기 때문에 〈탈무드〉가 언제 처음 기록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팔레스타인 탈무드〉는 1523~24년 베네치아에서 처음 인쇄되었으며,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1482년경 스페인에서 인쇄되었다. 〈탈무드〉는 세계 전역에 있는 정통파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경전이 되어왔다. 랍비들의 종교적 신념은 〈탈무드〉의 판결·사상·태도에 잘 나타나 있는데, 〈탈무드〉는 의식법 및 사회법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방대한 양의 《탈무드》
방대한 양의 《탈무드》

〈미슈나〉는 유대 구전 율법들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법전으로서, 3세기초 유다 하 나시가 완성했다.

유대교 학자들(아모라임)의 두 학파인 팔레스타인 학파와 바빌로니아 학파는 각각 독자적인 〈탈무드〉를 만들어냈다. 두 학파가 동일한 〈미슈나〉를 사용했고 서로 자문을 구하기도 했으나, 결국 율법·전승·주석으로 이루어진 별개의 모음집을 만들었다. 팔레스타인의 아모라임은 약 2세기 동안 작업하여 400년경(바빌로니아 아모라임보다 약 1세기가량 앞섬) 완성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탈무드 바블리〉라고도 함)는 늦게 완성된 만큼 〈팔레스타인 탈무드〉(〈탈무드 예루샬미〉라고도 함)보다 방대하며, 그런 이유로 더 높이 평가받는다.

두 〈탈무드〉 모두 〈미슈나〉의 모든 부분을 다룬 것은 아니다. 어떤 부분들은 아예 주석되지 않았고 어떤 부분들은 그 주석들이 상실된 것 같다. 초기 사본들과 인쇄본들에서는 〈미슈나〉에 대한 주석을 〈탈무드〉라고 했으나, 1578~81년에 나온 바젤판의 경우에는 교회 검열국이 〈탈무드〉라는 이름을 〈게마라〉(아람어로 '완성'이라는 뜻)로 바꾸었다.

이렇게 바뀐 이름이 오랫동안 사용되었으며, 〈탈무드〉라는 이름은 〈미슈나〉와 〈게마라〉를 합친 전체를 가리키는 데만 쓰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많은 〈탈무드〉 학자들이 다시 옛날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탈무드〉는 인간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법전이다. 〈탈무드〉의 자료는 독특한 논법으로 구성되었고, 본문도 이러한 논법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그것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노력들이 기록되어 있다. 랍비들의 종교적 신념은 〈탈무드〉의 판결·사상·태도에 잘 나타나 있는데, 〈탈무드〉는 의식법 및 사회법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탈무드〉가 완성된 뒤 그 내용을 법전으로 만들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알려진 최초의 시도는 8세기에 예후다이 가온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결정된 율법 Halakhot pesuqot〉과 9세기에 시메온 키야라가 지은 〈위대한 율법 Halakhot gedolot〉이다. 이 두 책은 〈탈무드〉의 논법을 없앴지만, 그 순서와 용어는 그대로 보존했다. 이후에 법전편찬은 1가지 주제나 분야에 집중하여 연구하는 방식으로 씌어졌다.

이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는 12세기에 마이모니데스가 쓴 〈재검토된 토라 Mishne Torah〉와 14세기에 야코프 벤 아셰르가 쓴 〈줄들 또는 부분들의 책 Sefer haṭurim〉, 16세기 요제프 카로가 쓴 〈준비된 식탁 Shulḥan ⁽arukh〉이 있다. 세파르디 전승을 중심으로 씌어진 〈준비된 식탁〉에 16세기 아슈케나지 소속의 법전 편찬자 모세스 이세를레스가 주석을 붙였는데, 그 형식은 모든 유대 법전의 표준이 되었다.

그밖에도 〈탈무드〉에 대한 해석 문헌이 아주 많다. 11세기에 유럽에서는 라시(랍비 슐로모 이츠하키)가 지은 중요한 주석서가 나왔다. 그의 손자들인 이사크, 사무엘, 야코프와 같은 랍비들은 〈미슈나〉를 해석했듯이 〈탈무드〉도 해석했으며, 그로써 '토사포트'라는 해석 방법을 만들었다.

이것이 유럽 전역에서 받아들여졌으며, 람반(모세스 벤 나흐만)과 란(니심 벤 레우벤 게론디)과 같은 세파르디 소속의 저자들이 쓴 주석에 영향을 주었다.

〈탈무드〉 문헌의 또다른 형식은 7세기에 학자들이 법률과 종교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레스폰사)을 쓰는 방식으로 생겨났다. 레스폰사 문학은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져왔으며, 중세기의 주요저자들로는 마이모니데스·람반·란 등을 들 수 있다.

고대 학교들은 구전으로 학문을 전수했기 때문에 〈탈무드〉가 언제 처음 기록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팔레스타인 탈무드〉는 1523~24년 베네치아에서 처음 인쇄되었으며,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1482년경 스페인에서 인쇄되었다. 1886년에 빌뉴스에서 처음 인쇄된 표준 번역본은 각 페이지마다 〈미슈나〉와 그에 관련된 〈탈무드〉, 주석, 관주를 실었다. 〈탈무드〉는 세계 전역에 있는 정통파 유대인들에게 계속해서 중요한 경전이 되어왔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래 보수파 유대인들은 점점 더 〈탈무드〉 연구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반면 개혁파 유대인들은 〈탈무드〉식 논법과 '레스폰사' 해석 형식을 받아들였다. 현대 〈탈무드〉 연구는 이스라엘과 미국에 집중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