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롱

탈롱

다른 표기 언어 Jean(-Baptiste) Talon
요약 테이블
출생 1625경, 프랑스 샬롱쉬르마른
사망 1694. 11. 24, 파리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정치가, 뉴프랑스(캐나다)의 초대 앵탕당(국왕 대리행정관).
Comte d'Orsainville라고도 함.

탈롱(Jean(-Baptiste) Talon)
탈롱(Jean(-Baptiste) Talon)

캐나다 경제를 발전시키려고 애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28세에 프랑스군에 들어가 행정업무를 맡았고, 1653년에 프랑스군 지도자인 튀렌 자작의 부대에서 감독관이 되었다. 1655년에 벨기에 에노 주의 앵탕당으로 임명되어 10년 동안 일하다가 1665년에 뉴프랑스 앵탕당이 되었는데, 이 직책은 식민지의 모든 민간행정뿐만 아니라 군대 지도자들과의 협력도 책임져야 하는 자리였다.

루이 14세와 장 바티스트 콜베르 장관은 탈롱이 식민지를 경제적으로 자립시킬 것을 원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탈롱은 정착지를 조성하고 경제구조를 다각화함으로써 이민과 인구 증가를 장려했다. 경제를 다각화하면 산업화가 촉진되고 캐나다와 서인도제도 및 프랑스 사이에서 삼각무역 체제를 확립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 부족과 본국의 원조 결여 때문에 그의 노력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탈롱은 1668년에 프랑스로 돌아갔지만, 정부의 설득을 받아들여 1670년에 다시 캐나다로 갔다. 그곳에서 식민지의 세계적 위치와 영국인들의 위협에 점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그는 탐험을 장려했다.

미지의 땅을 탐험하면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의 권리를 더욱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고, 세인트로렌스 식민지를 프랑스 식민 활동의 중심 거점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와 독점 기업들은 그의 노력에 저항했고, 그가 1672년에 캐나다를 떠난 뒤 그가 착수한 일들은 대부분 중단되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탈롱은 왕의 의상을 관리하는 수석시종이자 왕의 사실시종이 되었다. 그는 1675년 오르생빌 백작작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