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작

타작

다른 표기 언어 thresh , 打作

요약 타작은 최종적인 생산과정으로 집중적인 공동작업이 필요하다. 타작에는 개상·도리깨·벼훑이·궁굴통·콤바인 등이 이용된다. 과거에는 품앗이를 통해 개상질과 도리깨질을 했는데, 벼·보리는 개상질을 했고 콩·수수 등은 도리깨질을 했다.
일제강점기에 족답탈곡기가 도입되었다. 1970년대부터 경운기가 널리 보급되자 동력탈곡기로 대체되었는데, 처음에는 소형탈곡기가 도입되었으나 점차 대형탈곡기를 이용했다. 소형탈곡기에 의한 작업이 이루어짐으로써 보조 노동력이 대폭 감축되고 논에서 직접 벼탈곡작업이 행해졌다. 대형탈곡기를 이용할 경우에는 소수의 작업자만이 조를 짜서 작업을 하며, 동력원을 트랙터에 의존하면 작업능률을 더욱 높아진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콤바인이 도입되어 수확작업과 탈곡작업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최종적인 생산과정에 속하고 집중적인 공동작업을 해야 한다. 이 작업에는 개상[脫穀臺]·도리깨[連枷]·벼훑이[千齒]·궁굴통·콤바인 등이 이용된다. 과거에는 품앗이를 통해 개상질과 도리깨질을 했는데, 벼나 보리는 개상질을 했고 콩·수수 등의 잡곡은 도리깨질을 했다.

도리깨질
도리깨질
타작
타작

굵기가 10~15㎝인 소나무 3~4개를 10㎝ 간격으로 나란히 묶고 네 귀에 다리를 단 기구를 개상이라고 하는데, 이 개상에다 대고 곡식단을 태질하여 알갱이를 털어내는 것을 개상질이라고 한다. 도리깨질은 먼저 바닥에 이삭을 마주보도록 깔아놓은 뒤 보통 2명이 마주서서 도리깨로 곡식단을 교대로 내리쳐서 알곡을 털어내는 일이다.

벼탈곡작업은 전통적으로 가족 및 친지들, 그리고 품앗이나 고용에 의해 조달된 많은 인원이 결집노동을 통해 해결했으며, 그네나 채통과 같은 원시적인 도구가 이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족답탈곡기가 도입되었는데, 이것을 이용한 탈곡작업과정은 탈곡기를 중심으로 하여 옮겨오는 작업, 족답탈곡작업, 선별작업(거적대기 제거), 풍구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10마지기(약 2,000~3,000평) 논의 탈곡작업에는 10명 이상의 일꾼이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작업을 했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경운기가 널리 보급되자 족답탈곡기는 점차 사라지고 동력탈곡기로 대체되었는데, 처음에는 소형탈곡기가 도입되었으나 점차 대형탈곡기로 대체되었다. 소형탈곡기에 의한 작업이 이루어짐으로써 보조 노동력이 대폭 감축되고 논에서 직접 벼탈곡작업이 행해졌다. 대형탈곡기를 이용할 경우에는 소수의 작업자만이 조를 짜서 작업을 하며, 동력원을 경운기에 의존하기도 하지만 트랙터에 의존하면 작업능률을 더욱 높일 수 있다. 대형탈곡기와 결합하여 작업을 하는 사람은 4~7명 정도인데, 이들 작업조는 각 탈곡 주인으로부터 2~3명의 작업인원을 보조받는다.

이처럼 탈곡작업에서는 일찍부터 기계를 이용하는 작업조직이 나타났으며, 이들 작업조직이 마을의 탈곡작업을 거의 다 담당한다. 마을의 크기에 따라 몇 개의 탈곡작업반이 조직되어 있으며, 이들 조직이 각 농가의 신청을 받거나 회원제로 돌아가면서 작업을 해주고 일정한 작업비를 탈곡량의 일정비율로 받는다. 물론 탈곡작업반이 조직되어 있지 않은 마을에는 이웃 마을이나 다른 전문적인 탈곡작업반이 들어와 작업을 하기도 한다.

1970년대말, 특히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콤바인이 도입되어 수확작업과 탈곡작업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작업 자체는 2명이 할 수 있으나 운반 등을 위해 탈곡작업인원 이외에 1~3명이 결합하고(대개 탈곡 주인과 그 가족) 경운기나 트랙터 등이 동원되어야 한다. 밭작물의 탈곡작업도 기계화가 일정하게 진전되고 있는데, 보리탈곡의 경우는 벼탈곡과 같지만, 다른 밭작물의 탈곡은 대개 동력탈곡기나 경운기를 이용한다. 그러나 벼 이외의 다른 식량작물의 재배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밭작물의 경우에는 벼탈곡처럼 조직화된 탈곡작업반은 별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