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 교회

키프로스 교회

다른 표기 언어 Church of Kípros

요약 동방정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자치 독립교회들 중 하나.
키프로스 그리스 정교회(Orthodox Church of K대체이미지pros)라고도 함.

제3차 세계 공의회인 에페소스 공의회(431)에서 처음 독립성을 인정받은 이래 트룰로 공의회(692)에서 재확인되었고, 그후 십자군이 이 섬을 점령하고 있을 때에도 독립성을 잃지 않았다. 프랑스 봉건왕조인 뤼지냥(1191~1489)과 베네치아 왕조(1489~1571)의 지배 아래 있을 때 라틴계 주교들이 키프로스 교회를 교황의 권위에 복종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1571년 오스만 투르크가 이 섬을 점령할 때까지 그리스계 주교들은 라틴계 대주교의 권위에 굴복하기도 했으며, 라틴계 주교들의 보조자 역할을 강요받았다.

이 교회의 최고권위기관은 니코시아의 대주교와 키프로스 섬의 파포스·키티움·키레니아의 세 주교로 이루어지는 교회회의이다. 오늘날까지도 사제단과 평신도가 그들을 선출하며, 4개의 주교구는 각각 몇 개의 소교구로 나누어진다. 주교들은 자연히 민족적 저항운동의 중심세력이 되었다. 그리스 독립전쟁(1821~32) 때 키프로스에 있는 수도원장들과 모든 주교들이 투르크인에게 교수형을 당했다. 영국의 지배 아래 있을 때(1878~1958)는 주교들이 그리스와 통합하기를 원하는 '그리스 키프로스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1956년 대주교 마카리오스와 키레니아의 주교가 영국인들에게 추방당했다. 1960년 새로운 키프로스 공화국이 독립하자, 교회는 옛 이름을 기초로 하여 그리스 정교회의 자치독립교회로서 지위를 확보했다. 대주교 마카리오스는 새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공화국이 건국된 후 수도원 생활이 크게 발전했다. 여러 수도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키쿠 수도원이다. 소교구의 사제들은 대학교 수준의 신학교에서 교육받으며 고등신학교육은 아테네대학교에서 받는다. 교회는 여러 개의 교육기관과 자선기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회·신학 월간지 〈사도 바르나바 Apostolos Barnabas〉를 발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