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 전쟁

크림 전쟁

다른 표기 언어 Crimean War
요약 테이블
발생 1853년
종결 1856년

요약 1853년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 내 러시아 정교도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도나우강 연안 공국을 점령하자 오스만 제국이 전쟁을 선포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이를 지원하였다.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의 참전을 막았으나 결국 오스트리아는 러시아를 적대했다. 1854년 연합군이 러시아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을 공격하자 러시아는 세바스토폴에서 철수했다. 주요 전투지는 알마강, 발라클라바, 인케르만이다.
파리 강화로 종전된 후 러시아는 후진성을 탈피하기 위한 개혁을 시작했으며, 오스트리아는 러시아의 지지를 잃자 그 영향권 아래 있던 독일과 이탈리아가 통일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크림 전쟁에서 나이팅게일은 군대위생에 대한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크림 전쟁(Crimean War)
크림 전쟁(Crimean War)

1855년 1월부터는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이 연합군으로 참전했다. 이 전쟁은 중동을 둘러싼 열강들의 분쟁에서 비롯된 것이나, 러시아가 투르크 제국 내 정교회 교도들에 대한 보호권을 주장한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 되어 일어났다. 한편 팔레스타인의 성지에 대한 러시아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의 권한을 놓고 러시아와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분쟁 또한 주요요인으로 작용했다.

1853년 7월 러시아가 투르크 제국과의 경계에 있는 도나우 강 연안의 공국들(지금의 루마니아)을 점령하자 투르크 제국은 영국의 지원을 받아 강경하게 맞섰다.

1853년 9월 23일 영국 함대가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로 향했다. 10월 4일 투르크는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하고 같은 달 도나우 강 연안의 공국에 주둔한 러시아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흑해 함대가 투르크 쪽 흑해 해안에 있는 시노페 앞바다에서 투르크 함대를 격파하자 영국과 프랑스 함대는 1854년 1월 3일 투르크의 수송 선단을 보호하기 위해 흑해로 들어왔다.

3월 28일 영국과 프랑스도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러시아는 오스트리아를 만족시켜 참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나우 강 연안의 공국에서 철수했지만 1854년 8월 오스트리아가 이곳을 점령했다. 1854년 9월 연합군이 흑해의 북쪽 해안에 있는 러시아의 크림 반도에 상륙해 1년에 걸친 세바스토폴 포위가 시작되었다. 주요전투는 9월 20일 알마 강에서, 10월 25일 발라클라바에서, 11월 5일 인케르만에서 벌어졌다.

1855년 1월 26일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도 전쟁에 가담해 1만 명의 병력을 파견했다. 프랑스군이 러시아의 주요거점인 말라호프를 공격한 지 3일이 지난 1855년 9월 11일, 러시아군은 요새를 폭파하고 함선들을 침몰시킨 뒤 마침내 세바스토폴에서 철수했다. 전쟁의 제2단계는 카프카스와 발트 해에서 전개되었다.

오스트리아가 연합군에 가담하겠다고 위협하자 러시아는 1856년 2월 1일 예비 강화조약을 받아들였다. 파리 강화회의(→ 파리 조약)는 2월 25일부터 3월 30일에 걸쳐 최종 타결안을 내놓았다. 크림 전쟁에서는 교전국 모두가 제대로 준비를 갖추지 않은 데다 지휘 체계가 형편없었다.

또한 질병으로 양측을 합해 약 25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병력이 죽었다. 크림 전쟁은 동유럽에서의 열강들의 이해관계를 해결하지 못했다. 새로 러시아 황제가 된 알렉산드르 2세(1855년 3월 니콜라이 1세를 계승함)는 이 전쟁을 통해 러시아가 유럽 강국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후진성을 탈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전쟁의 또다른 결과는 오스트리아가 영국과 프랑스 편에 가담함으로써 중부 유럽 문제에 대해 러시아의 지지를 잃은 점이다.

오스트리아는 영국과 프랑스에 의지하게 되었으나, 이들의 지원을 받지 못해 1859, 1866년의 전쟁에서 패배했고 오스트리아에 승리한 이탈리아와 독일은 각각 통일을 이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