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프

크리스토프

다른 표기 언어 Henry Christophe
요약 테이블
출생 1767. 10. 6, 영국령 서인도제도
사망 1820. 10. 8, 아이티 북부
국적 아이티

요약 아이티의 독립운동가.

노예 출신으로 아이티 독립전쟁(1791) 때 투생 루베르튀르의 부관으로 활약했으며, 아이티 정부 내에서 반대세력과 분규를 벌인 뒤 아이티 북부에 왕국을 건설했다.

1801년 아이티를 다시 점령하려는 프랑스에 맞서 싸우다가 1802년 자신을 사면해주고 예전의 프랑스군 계급을 그대로 유지시켜준다는 조건에 항복했다. 그뒤 장 자크 데살린에 협조해 프랑스 세력을 몰아내고 그의 밑에서 군대를 지휘했다. 데살린이 암살된 뒤 군사위원회에 의해 아이티의 임시 수반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아이티에 가장 알맞는 정치형태는 독재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1806년 12월 18일 제헌의회를 소집했다. 크리스토프의 유일한 권력경쟁자인 알렉상드르 사베 페티옹은 남부와 서부에서 반대파 세력을 구축했다. 페티옹은 제헌의회 의장으로 임명되어 헌법 초안을 작성했고, 통과된 최종안은 크리스토프를 명목상의 국가 수반으로만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 보복으로 크리스토프는 군대를 동원하여 페티옹에 대항했으나 1807년 1월 6일 패하고 북부로 물러났다.

그는 그곳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 1811년부터 앙리 1세라 칭하며 통치했다. 통치기간중 대농장들을 군지휘관들에게 나누어주고 농민출신 병사들이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징병을 해제했으며, 왕국은 전반적으로 번영을 누렸다. 또한 수도인 카프아이티앵 남쪽에 유명한 라페리에르 요새를 쌓았다. 그는 1820년 8월 갑작스런 신체마비 증세를 보였는데, 그의 이같은 건강상태가 알려지자 반란이 일어났다. 아이티를 평정하려 한 자신의 노력이 실패한 데 낙담한 그는 총으로 자살했고 왕국은 아이티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