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스토르

콰이스토르

다른 표기 언어 quaestor

요약 고대 로마의 정규 행정관 가운데 가장 낮은 직급.

이들의 전통적 임무는 국고를 관리하는 것이었다(이 때문에 보통 재무관이라 번역함). 그러나 왕정시대에 왕들은 살인사건을 다루기 위해 콰이스토르 파리키디(사법권을 가진 콰이스토르)를 임명했다.

BC 509년에 공화국이 출범하자, 2명의 콘술(집정관)은 공공 금고를 관리할 콰이스토르를 각각 1명씩 임명했다. BC 447년부터 부족회의에서 해마다 2명의 콰이스토르를 선출했다. 콰이스토르는 야심만만한 젊은이들이 맨 먼저 얻으려고 애쓰는 행정관 자리가 되었다.

BC 5세기말에는 법령에 따라 평민들도 이 공직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콰이스토르의 수는 4명으로 늘어났다. 2명의 콰이스토르는 2명의 콘술이 출전할 때 동행해 병참 장교로 복무했고, 나머지 2명의 콰이스토르는 로마에 남아 국고의 재정업무를 감독했다. 로마가 이탈리아를 정복하기 시작하자 콰이스토르는 8명으로 늘어났고, 정복지에서 세금을 징수하거나 신병을 확보하는 책임을 맡았다. 속주 총독들도 저마다 병참 장교와 징세관으로 일하는 콰이스토르를 거느리고 있었다. 속주에서는 이따금 콰이스토르가 군사적 기능도 수행했다.

BC 2세기에 콰이스토르가 될 수 있는 최저 연령이 28세로 정해졌다. 이들은 임기가 끝나면 원로원에 들어가는 일이 흔했다. BC 82년에 술라가 독재관이 된 뒤 콰이스토르의 최저 연령은 30세로 높아졌고, 임기를 마치면 자동적으로 원로원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수도 20명으로 늘어났다.

BC 45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콰이스토르의 수를 40명으로 늘렸지만, 아우구스투스는 다시 20명으로 환원하고 콰이스토르의 권한과 책임을 줄였다. 콰이스토르의 재정적 책임은 나중에는 제국 관리들이 떠맡게 되었다. AD 4세기경에는 콰이스토르가 순전한 명예직이 되었으며, 대개 부자들이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이 공직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