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브

콩브

다른 표기 언어 (Justin-Louis-)Émile Comb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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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35. 9. 6, 프랑스 로크쿠르브
사망 1921. 5. 25, 퐁스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총리(1902~05).

드레퓌스 사건의 여파 속에서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도했다. 젊은시절에 신학생이었던 콩브는 1860년에 박사학위논문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심리학 La Psychologie de saint Thomas d'Acquin〉을 발표했지만, 성직자로 임명되기 전에 교회를 떠났다. 그는 의학을 공부하고 퐁스에 정착하여 1875년에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1885년에 샤랑탱페리외르 도(道)에서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성직자의 정치개입에 반대하는 급진당과 손을 잡았다. 1895년에 콩브는 레옹 정부에 들어가 교육장관으로 일했다. 1896년 4월 그 자리를 떠난 뒤에도 그는 계속 정계에서 활동했고,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피에르 발데크 루소의 노력을 지지했다. 콩브는 1902년에 발데크 루소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된 뒤, 거의 모든 종교교단을 프랑스에서 추방하고 특히 교육문제에서 교회가 맡고 있는 중요한 공공기능을 제거하는 법률에 찬성했다. 이러한 결정은 프랑스와 교황청의 외교관계 단절을 촉진시켰다. 1905년 12월 정교분리법이 정식으로 채택되었으나 콩브는 '밀고장 사건'(affaire des fiches de délation)으로 이미 권력을 잃은 뒤였다. 밀고장 사건이란 호전적인 반교권주의자이며 콩브 내각의 육군장관이었던 루이 앙드레 장군이 프리메이슨 집단으로부터 반동적이고 교권주의적인 인물로 의심받고 있는 장교들에 대한 보고서를 받았다는 혐의로 고발당한 사건을 말한다. 콩브는 내각에서 물러난 뒤 〈정교분리 운동 Une Campagne laïgue〉(1904)·〈제2의 정교분리 운동 Une Deuxième Campagne laïgue〉(1905)·〈나의 내각 Mon Ministère〉(1906)이라는 책을 썼다. 많은 공화주의자들의 존경을 받은 그는 나이가 많음에도 1915년 10월 옛 동료인 아리스티드 브리앙의 요청에 따라 브리앙의 내각에서 무임소장관으로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