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더

콜더

다른 표기 언어 Alexander (Stirling) Calder
요약 테이블
출생 1898. 7. 22, 미국 펜실베이니아 론턴
사망 1976. 11. 11, 뉴욕 시
국적 미국

요약 정교하게 균형을 맞추어 매달아놓은 부품들이 동력이나 기류에 따라 운동하도록 만든 키네틱 조각의 일종인 모빌을 창시한 조각가이다. 움직이지 않는 조각은 스테이빌이라고 부른다. 철사를 이용한 소규모 작품들도 많이 만들었다. 기술학교에서 공부했으나 삽화를 그리면서 미술에 관심을 가졌고, 1926년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조각을 하면서 취미 삼아 나무와 철사를 이용해 장난감 같은 동물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호안 미로와 네덜란드 화가인 피에트 몬드리안의 영향으로 그림의 현대적 동향을 알게 되었으며, 여기에 영향을 받아 추상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초기 작품은 비교적 크기가 작았지만 후기 작품들은 점점 크게 만들어나갔다. 큰 작품들을 만들 때는 흔히 작은 모형을 만든 뒤 투르에 있는 주물공장에서 확대했다. 콜더는 주로 프랑스에서 살았지만 코네티컷의 록스버리에도 집과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다.

모빌은 정교하게 균형을 맞추어 매달아놓은 부품들이 동력이나 기류에 따라 운동하도록 만든 키네틱 조각의 일종이다.

반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의 조각은 스테이빌이라고 부른다. 철사를 이용한 소규모 작품들도 많이 만들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조각가였으며, 어머니는 뛰어난 화가였다. 전통을 존중하는 미국 미술의 분위기 속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미술가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의 건강 때문에 잦은 여행과 이사를 한 것을 빼놓으면 그의 어린시절은 20세기초 대다수 중산계급의 미국 아이들과 거의 다를 것이 없었다.

어린시절에 관한 그의 추억은 대부분 가족 일과 운동, 친구관계 등이 전부이다. 물건 만드는 일과 기계장치들을 좋아했다는 점이 아마도 이후의 생애를 암시해준 유일한 징표였던 것 같다.

뉴저지 주의 호보컨에 있는 스티븐스 기술학교에서 공부한 뒤 1919년 기계공학학위를 따고 졸업했다. 한동안 널리 여행을 다녔으며 여러 기술직에서 일했다. 1922년 뉴욕에 있는 한 야간학교에서 데생을 배웠으며, 1923년 아트스튜던츠리그에 들어가 존 슬론과 조지 룩스 등이 이끄는 이른바 애시캔파(派)라는 뉴욕 풍경화가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그의 바람은 당대의 많은 미국 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삽화나 상업미술 분야에서 보수가 좋은 일자리를 얻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1924년 〈내셔널 폴리스 가제트 National Police Gazette〉에서 프로 복싱 시합과 서커스의 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틀에 박힌 상업삽화를 그리는 일을 하다가 1926년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파리에 가기로 결심했다. 파리에서 조각을 하면서 취미 삼아 나무와 철사를 이용해 장난감 같은 동물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들로 소형 서커스(뉴욕 휘트니 미술관)를 개발했으며, 파리에서는 많은 주요 미술가들과 문필가들이 이 서커스의 공연을 관람했다.

이 서커스의 작은 조상(彫像)들과 연속적인 선으로 그리는 드로잉에도 관심을 가져 철사를 이용한 조각들을 만들어냈다. 〈봄 Spring〉이라는 2m 높이의 여인상(像)과 〈로물루스와 레무스 Romulus and Remus〉라는 길이가 3.3m에 이르는 암이리 등이 있는 군상(群像) 등이 그것들이다.

서커스를 전시할 때 파리에서 만난 미술가들 중 그의 이후 생애에 가장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아마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호안 미로였을 것이다.

1920년대 후반에 초현실주의가 첫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콜더는 이 운동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그는 전생애에 걸쳐 '미술계'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미로와는 계속 가까이 지냈다. 1930년 네덜란드 화가인 피에트 몬드리안을 알게 되어 그의 화실에 들렀는데, 이 일로 해서 그는 하루 아침에 그림의 현대적 동향을 알게 되었으며 여기에 영향을 받아 추상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1931~32년 겨울, 여러 가지 기하학적인 모양들로 이루어져 동력으로 움직이는 조각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르셀 뒤샹이 이 조각들에 모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조각은 각 부분들이 움직이면서 서로의 관계가 변하기 때문에 그 구조도 끊임없이 변모한다. 그 다음해에 이와 비슷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작품들을 발표하자 장 아르프는 이것들을 스테이빌이라고 불렀으며, 그뒤로 콜더도 이 말을 사용했다.

1932년부터는 대부분의 모빌이 공기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1931년 자신의 결혼반지를 만들면서 그는 장신구를 만드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 같은 해에 〈이솝 우화 Fables of Aesop〉에 들어갈 삽화들을 그리기도 했고 1940년대에도 다른 많은 책의 삽화들을 그렸다. 1930년대에 콜더는 모빌의 개념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의 작품이 처음 주목받게 된 것은 1937년 파리 세계박람회에서였는데, 그는 그곳 스페인 분관(分館)을 장식할 수은 분수를 만들었다. 이 조각은 회전막대에 붙어 있는 판에 와닿는 수은의 흐름으로 움직였다. 이때부터 콜더의 명성은 유럽과 미국에서 해마다 열리는 전시회들을 통해 계속 높아졌으며, 1943년 뉴욕에 있는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로 절정에 이르렀다.

초기 작품은 비교적 크기가 작았지만 후기 작품들은 점점 크게 만들어나갔다.

거대한 스테이빌로는 1952년 카라카스에 있는 센트랄데베네수엘라대학교의 강당에 설치하기 위해 설계한 음향조절 천장이 있다.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에서 처음 개최한 '미술에서의 움직임'에 관한 전시회(1961)에서는 콜더와 그의 제자들의 작품이 부각되었고 1960년대를 거쳐 독일의 카셀과 뉴욕의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파리 현대미술관 등에서 큰 전시회를 몇 차례 열어 재능을 인정받았다.

1931년 루이저 쿠싱 제임스와 결혼한 뒤 프랑스와 미국뿐만 아니라 남아메리카와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함께 여행을 다녔다. 1955, 1956년에는 인도를 방문했으며 거기서 11개의 모빌을 만들었다. 1970년대에 콜더는 프랑스에서 투르 근처의 사셰에 작업실을 차렸으며, 그곳에서 그의 주요 스테이빌들을 설계하고 자유로운 형태의 선화(線畵)와 채색화들을 실험했다.

큰 작품들을 만들 때는 흔히 작은 모형을 만든 뒤 투르에 있는 주물공장에서 확대했다. 콜더는 주로 프랑스에서 살았지만 코네티컷의 록스버리에도 집과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