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일리

케일리

다른 표기 언어 Arthur Cayley
요약 테이블
출생 1821. 8. 16, 잉글랜드 서리 리치먼드
사망 1895. 1. 26, 케임브리지셔 케임브리지
국적 영국

요약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다양한 외국어를 공부했으나 특히 수학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는 순수수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섭렵했다. 교차선으로 생기는 점들의 순서는 공간변형하에서도 늘 일정하다는 개념을 창안하고 발전시켰다. 이 개념은 물리의 시간-공간 관계를 연구할 때 중요하다. 모든 차원의 공간에 대해 그가 이룩한 기하학의 발전은 상대론에서 4차원의 개념을 뚜렷이 하고, 기하공간을 형성하는 요소를 점과 선에만 의존하던 것에서 탈피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행과 열에 수를 나열하여 만든 행렬의 대수도 발전시켰는데 이 방법은 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가 그의 양자역학 연구에 응용했다. 그는 또한 유클리드 기하와 비유클리드 기하는 같은 종류의 기하에서 특수화된 경우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영국의 순수수학을 위한 현대적인 학교를 세우는 데 앞장섰다.

케일리는 그의 가족이 러시아로부터 영국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중에 출생했는데 러시아에서 그의 아버지는 무역에 종사했다. 케일리는 어린시절 복잡한 계산을 기교적으로 하는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나타냈다. 영국에 정착한 그의 아버지는 학교 당국의 권유로 1839년 5월 그를 트리니티 칼리지에 등록시켰고,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는 그리스어·프랑스어·독일어·이탈리아어를 공부했으며 수학분야에서 특출났다. 1842년 졸업한 이후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3년 계약을 맺은 것이 이후 50년 동안 수학문제를 연구하게 된 첫 계기가 되었다.

그는 연구실적이 매우 좋았던 기간 동안 평생 취미인 등산·그림·여행도 시작했다. 1845년 그의 계약기간이 끝났을 때 수학분야에서 직위를 얻지 못했으므로 법률경력을 쌓기 위해 런던의 링컨 법학생숙사에 들어갔다. 1849년 변호사 자격을 얻어 개업한 후 14년 동안 수학에 대한 관심을 추구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벌었다. 이 기간 동안 훌륭한 수학논문도 썼다. 1850년 동료 법률가이며 수학자인 J. J. 실베스터를 만나 그 이후로 함께 일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케일리는 순수수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루었다.

교차선으로 생기는 점들의 순서는 공간변형하에서도 늘 일정하다는 개념은 대수불변론의 응용인데, 이것은 케일리가 창안하고 실베스터의 도움을 받아 발전시켰다. 이 개념은 물리의 시간-공간 관계를 연구할 때 중요하다. 모든 차원의 공간에 대해 케일리가 이룩한 기하학의 발전은 상대론에서 4차원(시간-공간)의 개념을 뚜렷이 하고, 기하공간을 형성하는 요소를 점과 선에만 의존하던 것에서 탈피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케일리는 행(行)과 열(列)에 수를 나열하여 만든 행렬의 대수도 발전시켰는데 행렬곱은 차수와 순서가 다르면 그 결과값도 달라진다.

이 방법은 1925년 독일의 물리학자 W. 하이젠베르크가 그의 양자역학 연구에 응용했다. 케일리는 또한 유클리드 기하와 비유클리드 기하는 같은 종류의 기하에서 특수화된 경우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형상의 불변성에 의존하는 사영기하(projective geometry)와 각의 크기와 선의 길이에 의존하는 측량기하(metrical geometry)를 결합하는 방법을 고안한 결과 위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는 1857, 1862년 '과학발전을 위한 영국협회'(British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에 이론 동역학과 달의 평균운동에 대해 보고서를 준비했다.

케일리는 1863년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순수수학의 새로운 새들러좌 의장으로 선출될 때까지 변호사사업을 계속했다. 그해 수잔 모린과 결혼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 도착해서 죽을 때까지 그는 끊임없이 수학을 연구했다. 그는 또한 최초로 여학생의 입학을 허가하도록 돕기도 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그의 강의는 학생들에게 인기를 거의 끌지 못했지만, 그중 A. R. 포사이스는 그의 뒤를 이어 새들러좌 의장이 되었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발달한 함수의 새로운 이론을 소개하여 유럽 수학의 주류에 영국이 다시 동참하는 데 기여했다. 1881~82년 케일리는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순서를 바꾸어도 결과가 같은 경우인 아벨 함수를 강의했다.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그는 또다시 친구 실베스터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1876년 그곳의 교수가 되었다.

케일리는 과학부문의 저명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학술상을 거의 모두 받았다. 여러 대학교에서 명예학위를 받았고, 여러 나라에서 학술협회의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883년 런던 왕립학회에서 코플리 메달을 받았다. 그는 케임브리지 철학회, 런던 수학회, 그리고 왕립천문학회의 의장을 여러 번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