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넌

케넌

다른 표기 언어 George F(rost) Ken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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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04. 2. 16, 위스콘신 밀워키
사망 2005. 3. 17, 미국 뉴저지 프린스턴
국적 미국

요약 미국의 외교관·역사학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시작된 소련의 팽창주의에 맞서서 '봉쇄정책'을 옹호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대학 졸업 후 외무부에 들어가 일했다. 1947년 <포린 어페어스>지에 'X'라는 필명으로 봉쇄에 대한 입장을 밝혀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후 1950년대에는 고등연구소 역사학 종신교수가 되어 여생을 보냈다. 많은 글을 써왔던 그는 <러시아, 전쟁을 떠나다>와 <회고록>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미국의 외교관·역사학자. 1904년 미국 위스콘신 밀워키에서 태어나 1925년 프린스턴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외무부에 들어갔다. 바로 해외로 파견되어 제네바·베를린·탈린·리가 등 당시 미국과 외교관계가 없는 소련 주변 비밀정보 수집지역에서 여러 해를 보냈다.

국무부는 소련과 외교관계가 수립될 것에 대비해 1929년 케넌을 베를린대학교로 보내 러시아의 사상·언어·문화 연구에 전념하도록 했다. 1931년 연구를 마친 케넌은 1933년 미국이 소련정부를 인정함에 따라 윌리엄 C. 불리트 미국 대사를 모스크바까지 수행했다. 2년 뒤 빈으로 부임했으며, 1940년까지 프라하와 베를린에서 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나치에 잠시 억류되었으나 1942년에 석방되었다. 그뒤 곧바로 리스본과 모스크바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근무했다. 1946년 2월 케넌이 봉쇄정책을 부르짖는 전보를 친 곳은 바로 모스크바였다. 그해말 미국으로 돌아와 1947년 국무부 정책기획단의 책임자가 되었다.

케넌은 〈포린 어페어스 Foreign Affairs〉지 1947년 7월호에 'X'라는 필명으로 실려 큰 영향을 미쳤던 유명한 논문에서 봉쇄에 대한 그의 입장을 밝히고 소련 외교의 구조와 성격을 자세히 분석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케넌은 소련을 회유하려는 미국의 정책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소련은 여전히 본질적으로 서방과의 공존을 원하지 않으며 소련식 체제를 전세계에 확산시키려 하는 반면, 군사적 힘의 논리에 가장 민감하고 서방 진영이 그들의 팽창에 대해 능숙하고 단호하게 대처할 때에만 주춤거리거나 후퇴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소련의 팽창이 우려될 때마다 미국이 역공세를 펼쳐야 한다고 주장, 이러한 맞대응 속에서 소련은 미국과 협력하려 하거나, 아마도 소련 정부가 내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견해는 뒤에 미국의 대소련 정책의 바탕이 되었다.

1949년 국무부 자문위원직을 받아들였으나 이듬해 프린스턴대학교 고등연구소에 참여하기 위해 사임했다. 1952년 미국 대사로 소련에 다시 가지만, 소련이 그가 서방 외교관에 대한 소련의 대우에 대해 말한 것을 빌미 삼아 기피인물로 지목하자 이듬해 미국으로 되돌아왔다. 1956년 고등연구소 역사학 종신교수가 되었는데 1961~63년 유고슬라비아 대사로 근무한 것을 제외하고 계속 교단에 섰다.

1950년대말 그는 봉쇄정책을 수정해 소련과 함께 분쟁지역으로부터 철수하는 정책을 주장했다. 훗날 그는 베트남과 같은 세계의 다른 지역 다른 상황에서는 봉쇄정책이 적합하지 않다고 단호하게 주장했다. 많은 글을 써서 갈채를 받은 저술가이기도 한 케넌은 〈러시아, 전쟁을 떠나다 Russia Leaves the War〉(1956)와 〈회고록, 1925~1950 Memoirs, 1925~1950〉(1967)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