캑스턴

캑스턴

다른 표기 언어 William Caxton
요약 테이블
출생 1422경, 잉글랜드 켄트
사망 1491, 런던
국적 영국

요약 영국 최초의 인쇄업자.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서 영문학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1438년에 그는 돈 많은 직물상 로버트 라지의 도제가 되었는데 라지는 이듬해에 런던 시장이 되었다. 1441년 라지가 죽자 캑스턴은 유럽의 양모 교역 중심지 브뤼주로 이주했다. 이후 30년 동안 그의 사업은 점점 번성하게 되어 플랑드르와 네덜란드에서 영국 무역계의 영향력 있는 회원이 되었다. 1463년 베넬룩스 3국에서 동료 상인들에게 실제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자리인 '영국인모험상인연합의 총재'직을 맡았다. 1470년 무렵 그는 총재직을 그만두고 부르고뉴의 공작 부인 마르그리트의 사업에 뛰어들어 재정 고문으로 일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시기에 캑스턴의 관심이 문학으로 옮겨졌다.

1469년 3월에 라울 르 페브르의 〈트로이 역사집 Recueil des histoires de Troye〉을 번역하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잠시 그만두었다가 1471년 9월 19일 끝을 맺었다. 1470~72년에 살았던 쾰른에서 인쇄술을 배웠다. 〈트로이 역사집〉이라 이름붙인 완역본 3권의 끝맺음말에서 그는 책을 복사하느라고 "얼마나 많은 펜이 닳았으며, 얼마나 손과 눈이 혹사당했는가"를 고백하고 있는데, 이러한 큰 대가를 개인적으로 치르고 나서 그는 인쇄하는 법을 '익히고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1474년 무렵 브뤼헤에 인쇄소를 차렸고, 영어로 인쇄된 최초의 책인 〈역사집 Recuyell〉을 그곳에서 1475년에 발간했다. 프랑스어를 영어로 옮긴 캑스턴의 번역본 〈체스 게임과 오락 The Game and Playe of the Chesse〉이 1476년에 나왔는데 이 책에서는 체스를 인생으로 비유하고 있다. 캑스턴은 브뤼헤에서 프랑스어로 된 2~3권의 책을 인쇄했으나 1476년 말엽 영국으로 돌아와 웨스트민스터에 인쇄소를 차렸다. 그때부터 그는 글쓰기와 인쇄에 몰두했다. 영국에서는 인쇄술의 개척자였지만 그는 활자 인쇄의 위대한 독창성을 보여주지 못했고, 눈길을 끌 만큼 아름다운 책을 만들지도 못했다.

영어로 인쇄된 최초의 책 〈철학자들의 언명과 말 Dictes and Sayenges of the Phylosophers〉이 1477년 11월 18일자로 발행되었다. 왕들과 귀족들, 돈 많은 상인들이 캑스턴의 후원자였고, 그들은 때로 특별한 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다양한 그의 작품들인 기사도 영웅담이나 연애담, 행위, 도덕성, 역사, 철학에 관한 책들과 삽화를 곁들인 첫 영어책인 백과사전 〈세계의 거울 The Myrrour of the worlde〉(1481)은 일반 독자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캑스턴이 간행한 다수의 예배서와 기도서는 대다수의 식자층에게 고정적인 읽을거리였다. 또한 그는 당시 그가 구할 수 있는 영문학 작품은 거의 모두 인쇄했다. 이 가운데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Canterbury Tales〉(1478경~1484경) 및 몇 편의 시들, 존 가워의 〈사랑의 고백 Confessio amantis〉(1483), 토머스 맬로리 경의 〈Morte Darthur〉(1485), 존 리드게이트의 많은 것을 들 수 있다. 캑스턴은 24권의 책을 번역했는데 그 가운데 몇 권은 엄청나게 길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여러 종류의 100여 책자를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