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슬힐 반란

캐슬힐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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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오스트레일리아 역사상 최초의 반란(1804. 3. 4~5).

대부분 정치범인 아일랜드 죄수들이 일으킨 이 반란은 3월 4일 반도들이 패러매타에 있는 뉴사우스웨일스 죄수 농장을 점거한 것에서 비롯해 이튿날에는 반도와 정부군 사이의 충돌로 발전했다. 이 충돌의 실제 무대는 캐슬힐에서 약 16㎞ 떨어진 비니거힐(지금의 루스힐)이었다.

3월 4일 밤 시드니 당국은 반란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뉴사우스웨일스대(隊)와 정착민들의 로열 어소시에이션(1800년 결성된 2개 민병 중대)으로 하여금 경계태세에 들어가게 했다. 그러나 3월 5일 비니거힐에 진지를 구축한 400명의 죄수와 싸우기 위해 파견된 것은 불과 57명의 병력과 소수의 민병뿐이었다. 정부군은 반도들과 2차례에 걸쳐 협상을 시도했으나 이것이 무산되자 발포했다. 죄수들은 빗발치는 탄알을 피해 달아났으나 15명이 죽고 많은 사람이 부상당했으며 반란군은 완전히 진압되었다.

반란을 주도했던 필립 커닝엄은 3월 5일 붙잡혀 즉각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3월 5~10일에 이 지역에서는 계엄령이 발효되었다. 그뒤 8명의 죄수가 더 재판을 받고 역시 교수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