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벗

캐벗

다른 표기 언어 Sebastian Cab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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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476경, 잉글랜드 글로스터셔 브리스틀(또는 베네치아)
사망 1557, 런던
국적 영국

요약 영국의 항해가·탐험가·지도제작자.

잉글랜드와 스페인 왕실의 위임을 받아 여러 차례 항해를 했다. 영국 최초의 북아메리카 항해 당시(1497) 그의 아버지 존 캐벗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 항해에서 뉴펀들랜드의 래브라도 해안(당시에는 중국 연안으로 오인됨)이 발견되었다. 초기생애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1512년에 잉글랜드 왕 헨리 8세의 지도제작자였으며, 그당시 프랑스에 대항하여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잉글랜드군에 동행했다.

그는 북아메리카의 북동 해안에 대해 잘 아는 덕분에 스페인 해군의 함장으로 임명되었으나, 페르난도의 죽음으로 1516년에 지휘하기로 예정된 항해가 취소되었다. 그는 계속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스페인 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 밑에서 일했으며, 1518년에는 누에바인디아의 스페인 심의회 위원과 수석 도선사 및 공식 도선사 심사관에 임명되었다.

1520년 잉글랜드에 돌아왔을 때 함대 지휘를 제의받았으며 1525년 3척으로 구성된 스페인 탐험선단의 지휘를 맡아 동방무역 개척길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탐험은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이는 남아메리카의 라플라타 강 지역에 보물이 있다는 황당무계한 소문 때문이었다. 약 3년간의 성과 없는 탐험 끝에 스페인으로 돌아온 그는 탐험실패에 대한 문책으로 아프리카로 추방되었다.

2년 후 사면되어 수석 도선사의 옛 직책에 복귀했다. 널리 알려진 그의 세계지도(1544) 1벌이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6세로부터 해군의 직책을 제의받고 이를 수락했으며(1548), 아울러 연금도 받았다. 잉글랜드에서 그는 유럽으로부터 동방에 이르는 북동 항로를 개척하기 위한 탐사대를 조직하는 '모험상인 협회'의 총재로 있었다. 협회의 이 목적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몇 차례 항해 참사가 뒤따랐지만 러시아와의 무역은 촉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