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브레 조약

캉브레 조약

다른 표기 언어 Treaty of Cambrai

요약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와 합스부르크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 사이에 벌어진 여러 전쟁에서 한 단계를 매듭지은 조약(1529. 8. 3).
Paix des Dames라고도 함.

이 조약으로 잠시나마 이탈리아에서 스페인(합스부르크가)의 주도권이 인정되었다. 카를 5세는 몇 차례의 승리에 이어 1525년 이탈리아 파비아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했으며 프랑수아 1세에게 응징의 성격이 강한 마드리드 조약에 서명하도록 강요했다. 그러자 카를 5세의 위세가 커지는 것을 우려한 잉글랜드와 베네치아, 그리고 카를 5세의 동맹세력이었던 교황 등은 태도를 바꾸어 프랑스 편에 가담했다.

1528년 카를 5세가 고용한 프로테스탄트 용병들이 로마를 약탈하자 프랑스는 전쟁을 선포하고 밀라노와 나폴리를 침공했다. 그러나 제노바의 함대가 카를 5세 진영으로 가담하자 프랑스의 승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 양측은 모두 오랜 전쟁으로 지친데다가 재원이 고갈되었으며 그에 따라 캉브레 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은 '여인들의 평화조약'(Paix des Dames)으로도 불렸는데, 그것은 당시 프랑수아 1세의 부재중 섭정을 맡았던 그의 어머니 사보이의 루이즈와, 네덜란드의 섭정이자 카를 5세의 숙모이던 오스트리아의 마르가레테 두 사람이 교섭을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수아 1세는 이탈리아에 대한 소유권 요구를 포기했으며 또한 플랑드르 및 아르투아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했다. 이에 부응해 카를 5세는 당시 부르고뉴에 대한 소유권 요구를 더 진전시키지 않기로 합의하고 그대신 자신이 억류하고 있던 2명의 프랑스의 왕자들에 대한 몸값으로 돈을 받아냈다. 프랑수아 1세는 동맹세력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부르봉가의 샤를과 오라녜 공의 소유영토를 얻었다. 한편 프랑스가 스페인을 밀어내고 대신 이탈리아 반도에서 주도세력으로 나서기 위한 시도로 3차례나 이탈리아를 침공함에 따라 이탈리아 전쟁이 재개되었지만 침공이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프랑스는 결국 1559년 카토-캉브레지 강화조약을 맺고 이탈리아에 대한 주도권 장악을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