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아

카푸아

다른 표기 언어 Capua

요약 나폴리에서 북쪽으로 26㎞ 떨어진 지금의 산타마리아카푸아베테레 시에 있었다. 카푸아는 BC 600년경 에트루리아족이 세운 것으로 보이며, 이후 삼니움족의 지배를 받았다. BC 340년 로마와 라틴동맹 간에 벌어진 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하자 카푸아는 자치시로서 로마의 지배에 들어갔고 시민들은 제한적인 로마 시민권을 받았다. BC 211년 로마에 재점령당했으며, BC 194년 카푸아의 관할지역에 로마의 식민지인 볼투르눔과 리테르눔이 건설되었다. 스파르타쿠스는 BC 79년 카푸아에서 첫 봉기를 일으켰다. 456년 가이세리크가 이끄는 반달족이 침입하여 카푸아를 약탈했다. 초기의 묘지와 BC 6세기의 사원 2곳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로마시대 유적으로는 원형경기장과 목욕탕, 극장, 미트라 신을 모신 신전이 있다.

나폴리에서 북쪽으로 26㎞ 떨어진 지금의 산타마리아카푸아베테레 시(市)에 있었다. 현재 카푸아 근처에 있는 도시는 고대에는 카실리눔으로 불렸다. BC 600년경에 에트루리아족이 세운 것으로 보이는 고대 도시 카푸아는 카실리눔을 비롯해 칼라티아·아텔라와 같은 인근 마을들을 지배했다. 에트루리아족의 지배가 끝나자 이탈리아인의 한 계통인 삼니움족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BC 440경). 카푸아인들은 이탈리아어의 오스카 방언을 사용했다. BC 340년 로마와 라틴 동맹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서는 동맹을 지지했다. 이 전쟁에서 로마가 승리하자 카푸아는 자치시로서 로마의 지배에 들어갔고 그 시민들은 선거권이 제외된 제한적인 로마 시민권을 받았다. 카푸아는 자체의 행정관들과 언어를 유지했으며 BC 312년 아피아 가도(Via Appia)가 건설되면서 로마와 연결되었다. 도시는 계속 번창해 청동과 향료 생산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제2의 도시로 성장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BC 218~201)중 카르타고 편을 들었다가 BC 211년 로마에 재점령당해 정치적 권한을 상실하고 자체의 행정관들 대신 로마가 파견한 관리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BC 194년 카푸아의 관할지역에 로마의 식민지인 볼투르눔과 리테르눔이 건설되었다. 노예반란의 지도자인 스파르타쿠스는 BC 79년 이곳 카푸아에서 첫 봉기를 일으켰다. 로마가 공화정 말기 수십 년 간의 내전시대에 고통을 겪기도 했으나 제국시대(BC 27~)에 들어와 다시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456년 가이세리크가 이끄는 반달족이 쳐들어와 카푸아를 약탈했으며, 840년경에는 이슬람교도가 침입해 산타마리아에 있는 교회만 제외하고 모든 것을 파괴했다. 중세와 근대에 카푸아 시를 지칭했던 이름은 이 교회에서 따온 것이다. 초기의 묘지와 BC 6세기의 사원 2곳의 유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로마 시대의 유적으로는 스파르타쿠스가 검투사로서 싸웠던 원형경기장을 비롯해 목욕탕과 극장, 그리고 미트라 신을 모신 신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