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6세

카를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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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685. 10. 1, 오스트리아 빈
사망 1740. 10. 20, 빈
국적 신성 로마

요약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1711~40 재위), 오스트리아 대공(카를 3세), 헝가리의 왕.
(영). Charles Ⅵ.

자칭 스페인 왕(카를로스 3세)으로 카를 5세의 세계적인 제국을 재건하려고 애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아들을 낳지 못해 합스부르크 왕가의 직계 남자 혈통이 끊기자 '국사조칙'(國事詔勅 Pragmatic Sanction)을 발표해 딸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제국을 물려주었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레오폴트 1세의 둘째 아들로, 1700년 스페인 왕 카를로스 2세의 죽음으로 스페인 왕위가 비게 되자 스페인 왕위를 요구하고 나섰다.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이 일어난(1701) 뒤 잉글랜드·네덜란드·포르투갈 및 독일의 대부분 지역에서도 카를을 스페인 왕으로 인정했다. 1704~11년 스페인을 통치하려고 애썼지만 카탈루냐에서만 성공했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요제프 1세가 1711년에 죽자, 동생인 카를이 오스트리아 영토를 물려받았다. 그러자 카를 5세의 제국이 재건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동맹국들은 그를 버리고, 위트레흐트 조약(1713)을 통해 부르봉 왕가의 펠리페 5세를 스페인 왕으로 승인했다. 1711년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선출된 카를은 스페인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1714년까지 프랑스와 전쟁을 계속했다. 1714년 그는 프랑스와 라슈타트 조약을 맺어 이탈리아에 영토를 얻었다. 이것은 스페인을 잃은 것을 어느 정도 보상해주었다. 그러나 스페인에 있는 그의 고문들은 그후에도 오랫동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서유럽에 평화가 돌아온 뒤, 그는 오스만투르크와 싸워(1716~18)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헝가리와 세르비아에서 많은 영토를 얻었다. 오스텐데사(1722~31)를 세워 거기서 나온 많은 이익으로 제국을 더욱 강화했지만 영국과 네덜란드의 압력 때문에 결국 오스텐데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또한 트리에스테 항구를 확장했다. 그의 통치 말년에 오스트리아의 운명은 기울기 시작했다. 카를은 폴란드 왕위계승전쟁(1733~38)에서 패배했고, 투르크와 다시 충돌해(1736~39) 1718년에 얻은 유럽 남동부지역을 대부분 빼앗겼다.

그러나 이무렵 카를의 주요관심사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계승 문제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그는 1713년에 이미 '국사조칙'을 발표해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할 경우에도 오스트리아 영토가 분할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딸에게 상속되도록 규정했다. 외아들이 일찍 죽자 카를은 맏딸 마리아 테레지아에게 재산을 물려주었다.

그는 유럽 강대국들한테서 억지로 동의를 얻어내려고 분투했는데 그가 죽을 무렵에는 목적을 달성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결국 망상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른 뒤에야 겨우 아버지의 후계자로서 안정된 지위를 확립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