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암살음모사건

7월암살음모사건

다른 표기 언어 July Plot , 七月暗殺陰謀事件 동의어 7월 20일 사건, 7월 20일 음모,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라슈텐부르크 암살음모사건, Rastenburg Assassination Plot

요약 독일의 군부 지도자들이 아돌프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사건(1944. 7. 20).
라슈텐부르크 암살음모사건(Rastenburg Assassination Plot)이라고도 함.

암살 주모자들은 정부 통치권을 장악해 연합국 진영으로부터 보다 유리한 평화조건을 끌어내고자 했다. 1943년과 1944년초 독일의 군사적 상황이 악화되자, 군 고위층의 반히틀러 움직임이 거세졌다. 1943년말 발퀴레(Walküre:군대의 神 오딘의 명령으로 전사할 자를 가려 그 영혼을 인도하는 12시녀 중의 하나)라는 암호를 가진 쿠데타 계획들이 세워졌지만 의심이 많아진 히틀러에게 접근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졌다. 그는 일정을 예고 없이 자주 변경했기 때문에 그의 생명을 노렸던 초기의 많은 암살 기도는 좌절되었다.

음모의 지도부에는 육군대장 루트비히 베크(전임 총사령관), 소장 헤닝 폰 트레슈코브, 육군대장 프리드리히 올브리히트 등을 비롯한 일부 고위급 장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독일에서 가장 명망 있는 장군인 에르빈 로멜 야전사령관 역시 음모자들과 운명을 같이하기로 했으나, 7월 17일 연합국의 맹포격 때 입은 심한 부상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가장 용감한 음모자는 육군 중령 클라우스 필리프 셴크와 그라프 폰 슈타우펜베르크로 그들은 개인적으로 암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7월 20일 슈타우펜베르크는 히틀러가 군 수뇌부와 회동하고 있던 동프로이센 라슈텐부르크의 볼프스샨체('늑대의 소금') 야전사령부 회의실에 폭탄을 넣은 서류가방을 놓고 나왔다. 방을 빠져나온 그는 오후 12시 42분 폭발을 목격하고 히틀러가 죽었다고 확신했다.

슈타우펜베르크는 최고사령부를 장악하기로 한 다른 음모자들과 합류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갔다. 그러나 불운과 우유부단함이 겹쳐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참석 장교 한 사람이 옆에 있던 폭탄가방을 회의장의 탁자를 받치고 있던 커다란 참나무 버팀목 너머로 슬쩍 밀쳐버렸기 때문에 히틀러는 폭발 사정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속기사 1명과 장교 3명이 죽고 히틀러는 가벼운 부상만을 입은 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편 히틀러의 사망 여부를 확신하지 못한 다른 음모자들은 3시간 뒤 슈타우펜베르크가 베를린 근처에 도착할 때까지도 행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히틀러의 생존 소식이 전해지자, 베를린 사령부 반쿠데타 진영에서는 사전에 음모를 알고 이를 묵인했던 프리드리히 프롬 장군이 자신의 충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몇몇 핵심 음모자를 체포했다.

슈타우펜베르크와 올브리히트를 비롯한 2명의 가담자들이 즉시 총살되고 베크는 자살을 강요당했다. 다음날 히틀러의 친위대가 남은 공모자를 찾아냈다. 그들 대부분은 게슈타포의 고문에 못 이겨 공모자의 이름을 자백했으며, 인민법원에 끌려나가 무시무시한 나치 법관 롤란트 프라이슬러로부터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약 180~200여 명의 공모자가 교수형 또는 총살형을 당했으며, 어떤 경우는 피아노 현으로 잔인하게 목졸려 죽거나 고기 거는 갈고리에 매달려 죽었다. 프롬 역시 결국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히틀러는 몇몇 섬뜩한 처형 장면을 촬영하게 해서 그 영화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