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라르동

지라르동

다른 표기 언어 François Girardon
요약 테이블
출생 1628. 3. 17, 프랑스 트루아에서 세례받음
사망 1715. 9. 1, 파리
국적 프랑스

요약 프랑스의 조각가.

루이 14세 당시 베르사유를 장식하는 대규모 조각사업에서 크게 활약했다. 지라르동은 대법관인 피에르 세지에의 주목을 끌어 그의 소개로 파리에 가서 프랑수아 앙지에에게 조각을 배운 뒤 로마에 갔다. 1650년경 프랑스로 돌아왔으며 1657년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볼르비콩트에서 니콜라 푸케를 위해 일했는데 그가 실각한 뒤에는 왕궁을 장식하는 일을 더욱 많이 맡게 되었다. 1663년 루브르 궁의 아폴론 실에서 샤를 르 브룅 밑에서 일했고 1666년에는 베르사유에 있는 테티스의 동굴 장식을 의뢰받아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님프들에 둘러싸인 아폴론 Apollo Tended by the Nymphs〉을 조각했다. 이 회화적인 조각(뒤에 자리를 옮겨 배치가 바뀜)은 부분적으로는 헬레니즘 시대의 조각(특히 〈벨베데레의 아폴론 Apollo Belvedere〉)에서, 또 일부는 니콜라 푸생의 그림들에서 착상을 끌어낸 것 같다. 그밖에 베르사유에서 만든 작품들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장 구종의 〈이노상트 분수〉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부조 〈목욕하는 님프들 Bath of the Nymphs〉(1668∼70)과 당시 그 스스로 잠볼로냐의 〈사비니 여인들의 약탈 Rape of the Sabines〉에 견줄 만한 것이라고 주장한 〈페르세포네의 약탈 The Rape of Persephone〉(1677∼79, 받침대는 1699년 완성)이다. 〈페르세포네의 약탈〉은 현재의 위치, 즉 베르사유에 있는 열주의 중앙으로 옮겨지면서 그 효과가 줄어들었는데, 그것은 원래의 의도대로 일정한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되어 있지 않고 모든 각도에서 볼 수 있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라르동은 표면적으로는 바로크 양식의 미술가였지만, 베르사유 밖에 있는 차분하고 진지한 2점의 주요작품에서는 그의 뿌리 깊은 고전적 성향도 엿보인다. 그 작품들은 방돔 광장에 세워져 있다가 1792년 프랑스 혁명중에 파괴된 루이 14세의 기마상(1683∼92)과 1675년 제작한, 소르본대학 교회에 있는 리슐리외의 묘비(→ 지장)이다. 그의 작품은 베르니니를 비롯한 로마의 바로크 미술가들의 영향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바로크 조각보다 차분하고 절제되어 있다.

그는 고전적 성향과 장식가로서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앙투안 쿠아즈보와 샤를 르 브룅의 후계자인 쥘 아르두앵 망사르의 관계가 그렇듯이 르 브룅과 이상적인 협력 관계를 맺었다. 쿠아즈보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지라르동의 인기는 떨어졌으며, 1700년 이후로는 왕실의 주문을 거의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