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시

충주시

다른 표기 언어 忠州市
요약 테이블
위치 충청북도 북동부
인구 207,761 (2024)
면적 984.39㎢
행정구역 1개읍 12개면 12개동
사이트 https://www.cj100.net/

요약 충청북도 북동부에 있는 시.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이며 동부에는 충주호가, 시내에는 남한강이 흐른다. 특산물로 사과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관광지로는 충주댐·충주호·탄금대·충-중앙탑·수안보온천·능암온천 등이 있다. 동남부 수안보면 일대는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한다. 한편 탄금호에서는 세계조정선수권대회 등 스포츠 대회의 조정종목 경기가 유치되기도 한다. 면적 984.39㎢, 인구 207,761(2024).

목차

접기
  1. 연혁
  2. 인구
  3. 충주시 연혁
  4. 충주시 자연환경
  5. 충주시 인구
  6. 산업과 교통
  7. 충주시 유물·유적·관광
  8. 충주시 교육과 문화

대한민국 충청북도 북동부에 있는 시. 1995년 중원군과 통합시를 이루었다. 옛 중원문화의 중심지로 중원고구려비 등 문화유적이 많다. 충청북도 내륙의 교통요충지로 충주 댐의 건설과 함께 수산관광의 중심지이자 담배와 사과의 주산지로서 농업과 함께 풍부한 지하자원을 갖춘 공업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주덕읍·살미면·수안보면·이류면·신니면·노은면·앙성면·가금면·금가면·동량면·산척면·엄정면·소태면·성내충인동·교현안림동·교현2동·용산동·지현동·문화동·호암직동·달천동·봉방동·칠금금릉동·연수동·목행용탄동 등 1개읍 12개면 12개동이 있다(행정동 기준, 법정동 기준 26개동). 시청소재지는 으뜸로이다. 면적 984.39㎢, 인구 207,761(2024).

충주시 행정지도
충주시 행정지도
충주시내도
충주시내도

연혁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역이었으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으로 낭자곡성 또는 낭자성, 미을성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5세기 후반 고구려의 남진으로 고구려의 세력권에 들었으며, 6세기 중엽에는 신라의 세력확장에 따라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신라는 551년(진흥왕 12)에 이곳을 점령하고 북진의 발판으로 삼았다.

이후 충주는 충청도를 대표하는 중심 고장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중원경(中原京)으로 고쳤으며, 고려초에 충주로 개칭했다. 983년에 12목을 둘 때 충주목이 되었으며, 조선시대에도 충주목을 유지했다. 충주의 별호는 대원·태원(太原)·예성(蘂城)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6년에 충청북도 충주군이 되어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12개면을 음성군으로, 불정면을 괴산군으로 이관하면서 면적이 크게 줄었으며, 1908년에는 도청소재지가 청주로 옮겨갔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20개면이 13개면으로 통합되고, 일부 면은 제천군과 괴산군에 이관되었다.

1931년 충주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56년에 충주읍이 시로 승격·분리되었으며, 이때 충주군도 중원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중원군과 충주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도농통합시인 새로운 형태의 충주시를 이루었다(→ 중원군).

인구

통합 이전 중원군 지역은 1966년에 15만 3,487명으로 최대의 인구수를 보인 이후 계속해서 인구가 감소했다. 1970년 인구는 13만 3,754명, 1980년에는 10만 4,056명으로 감소했으며 1990년에는 1980년에 비해 37.4%나 감소하여 인구감소율이 더욱 커졌다. 충주댐의 건설로 인한 수몰지역의 인구감소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편 충주시 인구는 통합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1960년 이후 1990년까지의 인구추이를 살펴보면 1960년 6만 7,332명, 1970년 8만 7,727명, 1980년 11만 3,138명, 1990년 12만 9,994명으로 1960~90년 사이에 약 74%가 증가했다. 중원군과 통합시를 이룬 1995년 시의 인구는 21만 670명으로 증가했다. 이후 2000년 21만 8,098명으로 증가추세를 나타냈다.

2005년에는 20만 7,713명을 기록하면서 감소했다가 2010년 21만 1,295명으로 증가했고, 2015년 다시 20만 7,913으로 감소했다. 2024년 기준 인구는 20만 7,761명, 가구수는 10만 2,152가구이며 가구당 인구는 2.03명이다. 시 전체 인구 중 약 20%가 연수동(3만 5,498명)에 거주하며, 읍면 단위에서는 중앙탑면(1만 4,711명)과 대소원면(9,638명)에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며, 소태면(1,879명)에는 시내에서 가장 적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2024).

충주시 연혁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역이었으며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으로 낭자곡성 또는 낭자성, 미을성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5세기 후반 고구려의 남진으로 고구려의 세력권에 들었으며, 6세기 중엽에는 신라의 세력확장에 따라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신라는 551년(진흥왕 12)에 이곳을 점령, 556년에 국원소경을 설치하고 이듬해에 귀족의 인척·자제 들과 육부의 호민(豪民)들을 이사하도록 하여 신라 북진의 발판으로 삼았다.

이후 충주는 충청도를 대표하는 중심 고장이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중원경(中原京)으로 고쳤으며, 고려초에 충주로 개칭했다. 983년에 12목을 둘 때 충주목이 되었으며, 995년에는 창화군(昌化軍)으로 바꾸고 절도사(節度使)를 파견하여 중원도(中原道)에 속하게 했다. 1012년(현종 3)에 안무사로 바뀌었다가 1018년에 전국의 8개목 중 하나가 설치되어 양광도(楊廣道)에 소속되었다. 1254년(고종 41)에 국원경으로 승격되었다가 뒤에 다시 목으로 환원되었으며 1310년(충선왕 2)에는 충주로 강등되었다.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충주목이 되어 조선시대에도 충주목이었다. 그러나 명종·광해군·인조·숙종·영조 등 여러 시기에 모반 등으로 인해 유신현(維新懸) 또는 충원현(忠原懸)으로 개칭되면서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충주의 별호는 대원·태원(太原)·예성(蘂城)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5년에 충주부 충주군이 되었다가, 이듬해인 1896년에 13도제 실시로 충주부가 폐지되고 충청북도 소속의 충주군이 되어 충청북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그러나 1906년 월경지 정리로 금목면·생동면·맹동면·법왕면·소탄면·지내면·대조곡면·두의곡면·사다산면·천기음면·감미동면·거곡면을 음성군으로, 불정면을 괴산군으로 이관하여 면적이 크게 줄어들었으며, 1908년 도청소재지가 청주로 옮겨갔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20개면이 13개면으로 통합되고, 일부 면은 제천군과 괴산군에 이관되었다. 1931년 충주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56년에 충주읍이 시로 승격·분리되었으며, 이때 충주군도 중원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중원군과 충주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도농통합시인 새로운 형태의 충주시를 이루었다(→ 중원군).

충주시 자연환경

지형은 대체로 남고북저의 전형적인 분지지형을 이루고 있다. 동쪽은 태백산맥의 여맥이 제천시를 지나면서 고도가 많이 낮아지며, 동남쪽은 소백산맥, 서북쪽은 차령산맥이 뻗어 있다.

충주호
충주호

동쪽에는 대덕산(580m)·마미산(601m)·부산(780m)·주봉산(643m) 등이, 동남쪽의 소백산맥의 한 갈래를 이는 곳에는 대미산(684m)·신선봉(967m)·포암산(962m)·첩푸산(699m) 등이 솟아 있다. 서북쪽의 차령산맥 줄기에는 원통산(645m)·수레의산(679m)·부용산(644m)·국망산(770m) 등이 솟아 있다. 그밖에도 시의 곳곳에 계명산(775m)·남산(636m)·인등산(667m)·보련산(765m) 등 500m 이상 되는 산들이 있다.

주요하천은 동쪽으로 흘러들어와 중심시가지를 거쳐 중북부를 흐르는 남한강과, 남쪽 괴산군에서 흘러와 북류하여 탄금대 부근에서 남한강에 합류하는 달천이 있다.

그밖에 동쪽 경계를 흘러 충주호에 유입하는 원서천과 북쪽 경계를 흘러 소태면 덕은리에서 남한강에 유입하는 황산천, 소태면 소태재에서 발원하여 양촌리 부근에서 남한강에 유입하는 구룡천, 노은면과 가금면을 흘러 남한강에 유입하는 한포천, 엄정면 지역을 흐르는 논강천과 원곡천 등이 있다. 대부분의 하천이 산지를 흐르고 있어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한 일대의 충주평야와 서남부의 농경지를 제외하고는 평야의 발달이 미약하다.

시의 동쪽에는 충주 댐과 충주호가 있으며, 호암지를 비롯해 대제지·금곡제·동수제·대가미못 등 크고 작은 저수지가 곳곳에 있다. 기후는 중부내륙형기후구에 속하며, 내륙분지지형으로 대륙성기후를 나타내 기온의 연교차가 큰 편이다. 또한 초여름에는 태백산맥을 넘어오는 고온건조한 높새바람으로 인해 가뭄이 발생하기도 한다. 봄·가을에는 남한강과 달천 유역에 안개가 자주 발생한다.

식생은 온대낙엽활엽수림대에 속하나 소나무와 참나무가 우세한 침엽수와 활엽수의 혼효림이 대부분이다. 연평균기온 11.1℃ 내외, 1월평균기온 -4.7℃ 내외, 8월평균기온 24.9℃ 내외, 연강수량 1,162.2㎜ 정도이다.

충주시 인구

통합 이전 중원군 지역은 1966년에 15만 3,487명으로 최대의 인구수를 보인 이후 계속해서 인구가 감소했다. 1970년의 인구는 13만 3,754명으로 1960년의 12만 3,202명에 비해 8.6%의 인구증가율을 보였으나 1980년에는 10만 4,056명으로 1970년에 비해 22.2%의 인구감소율을 나타냈으며, 1990년에는 1980년에 비해 37.4%나 감소하여 인구감소율이 더욱 커졌다.

충주댐의 건설로 인한 수몰지역의 인구감소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1990년 인구이동상황은 전입이 6,773명, 전출이 1만 206명으로 전출이 훨씬 많으며, 도내와 도외의 인구이동 비율이 비슷했다.

한편 충주시 인구는 통합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1960년 이후 1990년까지의 인구추이를 살펴보면 1960년 6만 7,332명, 1970년 8만 7,727명, 1980년 11만 3,138명, 1990년 12만 9,994명으로 1960~70년에 30.3%. 1970~80년에 29%, 1980~90년에 14.9%로 그 증가폭이 낮아졌다. 1995년 중원군과 통합시를 이룬 후 시의 인구는 21만 670명으로 증가해 1990~95년에 62%의 인구증가율을 나타냈다. 1996년에는 21만 2,791명으로 약간 증가했으나 2024년 기준 20만 7,761명으로 다소 감소했다.

산업과 교통

충주시는 1차산업과 2차산업의 기반이 빈약하다. 3차산업도 중·소규모 산업과 서비스업이 대부분이어서 소비도시의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교통이 발달하고 전력과 용수 등이 풍부하여 공업도시로서의 성장이 기대되는 곳이다.

충주산업단지
충주산업단지

총경지면적 178.44㎢ 가운데 논이 91.03㎢, 밭이 87.41㎢이며, 경지율은 18.1%이다(2006). 주덕읍·신니면·양성면·금가면·봉방동·달천동·철금동을 중심으로 논농사가 활발해 질 좋은 충주미가 생산되고 있다. 주요농산물로는 쌀·콩을 비롯하여 무·배추·호박·감자·고추 등의 소채류와 사과·배·복숭아·포도 등의 과일이 있다. 이류면·노은면·가금면·금가면·엄정면·소태면·동량면을 중심으로 고추는 연간 4,283t이 생산되며, 음성군·영양군과 함께 우리나라 주요 고추생산지이다.

충주를 중심으로 괴산·음성 일대는 기후풍토가 사과재배에 알맞아 예로부터 사과의 명산지로 알려져 있다. 그밖에 특용작물로 인삼·잎담배·참깨 등이 있다. 잎담배는 충주지역에서 1911년 버지니아주의 황색 잎담배를 재배하기 시작해 현재 전국적으로 생산하고 있는데, 노동력 부족으로 생산량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축산업은 달천동·안림동·단월동 등지에서 한우가, 단월동·호암동 일대에서 돼지가 사육되고 있으며, 그밖에 젖소·사슴·토끼·꿩 사육과 양봉이 이루어진다. 임야면적은 639.79㎢로 전체면적의 65.0%를 차지한다. 수산업으로는 충주호 등을 이용한 내수면어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내에 있는 광구는 총 130개이며, 이중 22개 광구만이 가행되고 있다. 주요광산물은 석회석, 활석, 규석, 장석, 고령토가 생산된다. 주요광구로는 일신광업소·성보광업소·성심광업소 등이 있다. 공업은 총 272개 공장에 7,796명의 종업원이 근무하고 있는데, 충주역 주변의 봉방동에 30여 개의 공장이 집중되어 있다. 새한미디어가 가장 큰 규모의 공장이며 그밖에 주요공장으로는 역전동에 한국 활석 소비량의 80% 정도를 가공하는 일신산업의 활석제분공장이 있다. 봉방동에 이 지역 부근에서 많이 재배되고 있는 잎담배를 제골하는 (주)코택과 충주담배원료공장이 있다. 충주시에서는 농공단지와 2개의 공업지구를 설정하여 공장유치를 계속 추진하고 있다. 충주 중심지에서 북쪽으로 약 6km 지점에 남한강을 낀 평탄지 목행동·용탄동·금릉동 일대에 충주공업단지가 있으며, 총 73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조선시대에는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해 충청도·강원도·경상도 지방에서 거둔 조세미를 이곳에서 모아 서울로 수송하기 위한 덕흥창·가흥창 등이 있었던 규모가 큰 상업 중심지였으나, 한강수운의 쇠퇴와 함께 상권의 상당 부분을 청주시에 빼앗기게 되었다. 1995년 현재 상설시장 4개소가 있다. 충인동의 충주공설시장과 성서동의 중앙공설시장, 충인동의 현대 타운 상가, 목행동의 농수산물 도매상가 등을 중심으로 상업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밖에 소규모의 수산시장·청과물시장·가축시장이 열리고 있다. 5일 정기시장이 2개소 있다.

경부선과 중앙선이 충주를 비껴 부설되고, 이로 인해 충청북도 도청이 청주로 이전되는 등의 여러 요인으로 지역발전이 정체되었으나, 1950년대에는 충북선이 중앙선과 이어지는 등 교통이 발달하고 충주비료공장·활석제분공장 등이 건설되어 공업도시로 새로운 발전을 했다. 시의 서북쪽으로 충북선이 지나며, 이천·괴산·원주·보은·서울·문경·음성·영주를 잇는 국도가 지난다. 도로총길이 1056.32km, 도로포장률 70.08%이다(2006).

충주시 유물·유적·관광

시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국보 3, 보물 9, 사적 5, 중요무형문화재 1, 민속자료 1),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34, 기념물 15, 무형문화재 3), 문화재자료 6점이 있다.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산척면의 신석기시대 유적지와 가금면 탑평리, 동량면 용교리 등의 청동기시대 유적, 동량면 하천리의 철기시대 유적이 있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가금면 용전리 입석마을에 있는 중원고구려비(국보 제205호)를 비롯해 가금면의 누암리고분군(충청북도 기념물 제36호) 등 많은 고분들이 있으며, 산성으로는 칠금동의 탄금대토성(彈琴臺土城), 직동의 충주산성(忠州山城:충청북도 기념물 제31호)·대림산성(大林山城) 등과 성내동의 충주축성사적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8호)가 있다.

충주 고구려비
충주 고구려비

성터로는 가금면의 장미산성(薔薇山城), 살미면의 대림산성(大林山城), 상모면의 달마산성(達馬山城) 등이 있다. 이 지역은 불교문화재가 집중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중요 불교유적으로는 가금면의 중원탑평리7층석탑(국보 제6호)·중원봉황리마애불상군(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1호)·중원창동마애불(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6호)·중원창동5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호), 소태면 오량리의 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융탑(靑龍寺普覺國師定慧圓融塔:국보 제197호)·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융탑비(보물 제658호)·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융탑전사자석등(보물 제656호), 동량면 하천리의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淨土寺法鏡大師慈燈塔碑:보물 제17호), 상모면 미륵리의 괴산미륵리5층석탑(槐山彌勒里五層石塔:보물 제95호)·괴산미륵리석불입상(보물 제96호)·미륵리3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3호)·미륵리석등(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 엄정면 괴동리의 억정사대지국사비(億政寺大智國師碑:보물 제16호), 상모면 미륵리의 중원미륵리사지(中原彌勒里寺址:사적 제317호)·제원백운암철불좌상(提原白雲庵鐵佛坐像: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이 있으며, 그밖에 신니면의 원평리미륵석불(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호), 앙성면 모점리의 오갑사지석불좌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4호), 주덕읍 삼청리 용화사의 석불상, 단월동에 있는 단호사의 단호사철불좌상(丹湖寺鐵佛坐像:보물 제512호)·단호사3층석탑(丹湖寺三層石塔: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9호), 지현동의 충주철불좌상(忠州鐵佛坐像:보물 제98호), 목행동의 미륵불, 직동의 창룡사청석탑(蒼龍寺靑石塔)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교현동의 충주향교(忠州鄕校: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7호), 임경업 장군의 사당인 단월동의 임충민공충렬사(林忠愍公忠烈祠:사적 제189호), 용관동의 한남군사우(漢南君祠宇), 금가면 오석리의 충훈사와 충무공이수일묘소(충청북도 기념물 제21호), 신니면 신청리의 박팽년사우(충청북도 기념물 제27호), 엄정면 괴동리의 경종대왕태실(景宗大王胎室: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호), 엄정면 신만리의 유인석신도비, 주덕읍 사락리의 충강공이상급신도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3호) 등이 있다. 주요건축물로는 옛 관아 건물인 성내동의 충주청녕헌(忠州淸寧軒: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충주제금당(忠州製錦堂: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67호) 및 가금면 가흥리의 창고터, 살미면 용천리의 최함월고택(崔涵月古宅: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87호), 엄정면 미내리의 중원윤민걸가옥(중요민속자료 제135호), 금가면의 모현정 등이 있다.

그밖에 단호사 경내의 소나무와 아울러 관아 공원 내에 수령이 500년이나 되는 느티나무가 있으며,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된 전통 무술인 '택견'이 전수되고 있다. 또한 유물·유적과 더불어 탄금대(彈琴臺:충청북도 기념물 제4호)와 충주8경 등이 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이래 중원문화권을 형성하는 역사의 고장이며, 남한강의 중상류지역으로 명승지가 많아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상모면의 수안보온천·문경관문·미륵리유원지·월악산 송계계곡 등과 칠금동의 탄금공원에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며 즐겼다는 탄금대를 비롯하여 충혼탑·우륵기념비·대홍사·탄금정 등이 있어 대표적인 관광지를 이루고 있다.

특히 탄금대는 북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인해 형성된 절벽으로,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순국한 전적지로 유명하며, 수안보온천은 수질이 좋고 주변경치가 뛰어나 관광객이 많이 찾아온다.

또한 충주호 일대에는 충주 댐 건설에 따라 단양까지 뱃길이 생겨 단양군 일대의 수상관광자원이 개발됨으로써 충주관광권이 형성되어 있다. 월악-청풍-구단양-신단양으로 이어지는 54km의 뱃길에는 여객선이 1일 왕복 8회 운항되고 있다. 그밖에 신니면의 신덕저수지는 낚시터로 유명하며, 산척면의 삼탄유원지는 주변의 기암절벽에 돋아난 수목과 물이 조화를 이루어 여름철 피서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살미면의 노루목유원지, 엄정면의 목계솔밭도 관광객이 많다.

충주시 교육과 문화

전통 교육기관으로는 충주향교·누암서원(樓巖書院)·팔봉서원(八峰書院)·하강서원(荷江書院) 등이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896년에 설립된 충주공립소학교(지금의 교현초등학교)와 1908년 설립된 사립명신학교(지금의 엄정초등학교)가 있다. 유치원 47개소, 초등학교 38개교, 중학교 17개교, 고등학교 11개교, 전문대학 1개교가 있으며, 대학교는 한국교통대학교와 건국대학교 충주 캠퍼스가 있다.

충주교현초등학교
충주교현초등학교

문화행사로는 우륵문화제가 1971년 이후 매년 10월에 열리고 있으며, 충주세계무술축제가 1998년부터 매년 가을마다 시행되고 있다.

우륵문화제는 명현추모제와 각종 전시회, 전국가야금대회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명현추모제는 우륵·신립·임경업과 같은 명현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열리는 행사이다. 한편 1978년에 발족한 예성동회는 충주지역의 문화유산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문화단체로 고구려비를 발견하는 등의 학술적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그밖에 문화시설로는 공연장 5개소, 방송국 2개소, 시립·공공도서관 3개소, 충주문화회관, 충주박물관 등이 있으며, 동제로는 탄금대 아래의 양진명소라는 오룡(五龍)을 모신 사당에서 지내는 '오룡굿'이 지금도 1년에 1∼2회씩 거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매년 2월에 동편과 서편으로 나누어 행하는 줄다리기와 단옷날 그네뛰기, 자치기가 있다. 전해지는 설화로는 〈충주성전설〉·〈탄금대전설〉·〈달천전설〉·〈자린고비전설〉·〈암소바위전설〉·〈명마재전설〉 등이 있으며, 민요로는 모 찌는 노래 〈절우자〉와 모 심는 노래 〈아랑성〉, 그밖에 〈이듬김매기노래〉·〈회다지노래〉·〈말뚝박는노래〉·〈달풀이〉 등이 전승되고 있다. 종교기관으로는 개신교 교회 244개소, 천주교 교회 33개소, 불교 사찰 83개소, 유교 교당 1개소가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종합병원 2개소, 병원 2개소, 의원 102개소, 치과의원 32개소, 한의원 34개소, 보건소 관련 의료기관 30개소 등이 있다. 사회복지시설로는 아동복지시설 1개소, 노인복지시설 10개소, 장애인복지시설 4개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