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찍질

채찍질

다른 표기 언어 flagellation

요약 종교에서 신앙훈련을 위해 채찍으로 때리는 행위.

이 행위는 악령들을 내쫓는 행위, 정화 행위, 일종의 가학성애, 채찍에 깃든 동물의 힘을 입는 행위 등으로 해석되어왔으나, 이 가설들 중 어느 것도 이 관행의 모든 측면을 포괄하지는 못한다.

고대 원시인들에게서 채찍질이나 매질은 주로 입문·정화·다산 의식과 관련되었는데, 이 경우 물리적인 고통을 가하는 다른 방식도 포함되었다. 채찍질이나 신체부위를 절단하는 행위를 스스로 행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행하기도 했다.

수많은 북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은 입문의식 때 신이나 조상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매질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의식상 매질은 스파르타인이나 로마인 사이에서도 행해졌다. 초대 그리스도교에서는 복종하지 않는 성직자들을 징벌하기 위해 매질이 사용되었음이 분명하며, 4세기부터는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가 스스로 채찍질하는 것을 가장 효과적인 고행 방법으로 삼았다. 중세 초기에는 이러한 방법의 신앙훈련이 평신도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고, 13세기 중엽 이탈리아에서는 평신도·성직자·여자 등으로 구성된 채찍질고행형제회와 행렬이 조직되기 시작하여 독일과 북해 연안의 저지대국가로 퍼졌다.

14세기 중엽에는 사람들이 전염병을 두려워했으나, 교회가 도덕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예민한 신앙심을 갖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평정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종교적 위기상황에서 채찍질 고행이 등장했는데, 채찍질 고행자들은 스스로 노력해서 임박한 것으로 생각되는 하느님의 심판을 완화해보려고 했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 나라 곳곳을 걸어다녔다. 하루에 2번 시행하는 공개의식에서 남자들은 가죽채찍으로 각자의 등과 가슴을 때렸고, 여자들은 독방에 들어가 고행을 했다.

이 채찍질 고행자들의 경건·두려움·희망은 행렬 때 부르던 찬송에 나타나 있는데, 이 찬송의 단편들은 후대의 찬송가에 보존되어 있다. 이들의 의식 가운데 결정적인 부분은 유일한 구원방법이 교회가 정한 고백성사가 아니라 채찍질이라고 선언한 편지를 낭독하는 것이었다. 1349년 교황 클레멘스 6세와 그뒤 콘스탄츠 공의회(1414~18)는 채찍질을 정죄했다.

독일에서는 채찍질 고행자들이 분파로 조직되어 종교재판소의 표적이 되었다. 이 관행은 점차 사라졌으나, 16세기 예수회는 특히 남부 유럽 국가들에서 스스로 행하는 채찍질에 대해 평신도들의 관심을 되살렸다. 예수회의 지도 아래 고행형제회가 라틴아메리카에 보급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가끔 채찍질 고행이 시행되는 듯하다. 미국 남서부에서는 한 고행자 집단이 사순절 동안 채찍질 고행을 시행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