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

주례

다른 표기 언어 Chou li , 周禮 동의어 주관, 周官

요약 나머지 2권은 <의례>·<예기>이다. 주공의 저술로 간주되어왔으나 현대 학자들은 이 책이 BC 300년경 무명의 이상주의자가 엮은 것으로 본다. <주례>는 유가 사상뿐만 아니라 법가 사상의 영향도 받았다. 천관에서 통치 일반을, 지관에서 교육을, 춘관에서 사회적·종교적 제도를, 하관에서 군사를, 추관에서 법무를, 동관에서 인구·영토·농업을 다루었다. <주례>는 고려시대에 주요 유교경전의 하나로서 국가 교육기관의 공식과목으로 채택되었으며, 고려 말기 성리학자들은 <주례>를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주례>의 6관제도를 바탕으로 하여 조선왕조의 통치규범을 제시했다. 그뒤 세종 때 16책으로 간행되어 널리 보급되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몇몇 학자에 의해 <주례>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주관 周官〉이라고도 한다. 나머지 2권은 〈의례 儀禮〉·〈예기 禮記〉이다. 예부터 주공(周公:BC 12세기)의 저술로 간주되어왔으나 현대 학자들은 이 책이 BC 300년경에 무명의 이상주의자가 휘찬(彙撰)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수세기 동안 〈주례〉는 〈예기〉와 합쳐져 6경에 포함되었다.

〈주례〉는 유가 사상뿐만 아니라 법가 사상의 영향도 받았다. 천관(天官)에서 통치 일반을, 지관(地官)에서 교육을, 춘관(春官)에서 사회적·종교적 제도를, 하관(夏官)에서 군사를, 추관(秋官)에서 법무를, 동관(冬官)에서 인구·영토·농업을 다루었다. 12세기에 오래전에 유실된 〈악경 樂經〉 대신 6경에 포함되면서 특별한 평가를 받았다. 〈주례〉가 한국에 전래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이미 삼국시대에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주례〉는 고려시대에 주요 유교경전의 하나로서 국가 교육기관의 공식과목으로 채택되어, 1109년(예종 4) 국자감에 설치된 7재(七齋) 중의 하나인 구인재(求仁齋)에서 전강(專講)되었다. 〈주례〉가 불교와 도교에 맞서는 유학의 윤리와 경세사상을 담고 있는 까닭에, 고려 말기에 성리학이 발흥하면서 성리학자들 사이에 〈주례〉를 중시하는 경향이 일어났다.

조선왕조 개창에 핵심적 역할을 한 정도전(鄭道傳)은 〈조선경국전 朝鮮經國典〉에서 〈주례〉의 6관제도(六官制度)를 기본 모델로 하여 조선왕조의 통치규범을 제시했다. 그뒤 〈주례〉는 세종 때 16책으로 간행되어 일반에 널리 보급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새로운 사상에 대한 모색이 활발해지면서 몇몇 학자에 의해 〈주례〉의 연구가 이루어졌다. 윤휴(尹)는 〈주례〉를 연구하여 〈주례설 周禮說〉을 지었으며, 정약용(丁若鏞)은 〈주례〉에서 국가 기구의 원형과 어린도법(魚鱗圖法)의 연원을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