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희

조명희

다른 표기 언어 趙明熙 동의어 포석, 抱石, 목성, 木星, 적로, 笛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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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94. 8. 10, 충북 진천
사망 1938. 5. 11, 소련 하바로프스크
국적 한국

요약 1920년대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목적의식적 단계로 발전시켰으며 소련 망명 후 재소한인 문학 건설에 힘썼다. 1919년 일본 도요대학 동양철학과에 입학하면서 새로운 사상을 접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시 창작 및 연극공연을 전개했다.

조명희(趙明熙)
조명희(趙明熙)

호는 포석(抱石)·목성. 1920년대에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목적의식적 단계로 발전시켰으며 소련 망명 후 재소한인(在蘇韓人) 문학 건설에 힘썼다. 필명은 적로(笛蘆). 가난한 양반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방황하다 3·1운동에 참가해 투옥되기도 했다. 1919년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 동양철학과에 입학해 어렵게 고학을 하면서 새로운 사상에 접하게 되었고, 이때 친구들과 시 창작과 연극공연을 전개했다.

1925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하여 이기영·한설야 등과 마르크스주의 공부모임을 만들었다. 1928년 8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소련으로 망명한 뒤로는 한인촌 교사로 일했고 연해주 한인신문 〈선봉〉과 잡지 〈노력자의 조국〉 등에 글을 발표했다. 1934년 소련작가동맹의 원동(遠東) 지부 간부를 지냈으나, 스탈린의 탄압정책의 와중에서 일본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총살당했다. 1988년 중앙 아시아 한인 거주지역인 타슈켄트에 문학기념관이 세워졌다.

일본에서 귀국한 후 희극 〈김영일의 사〉(동우회, 1921. 7)·〈파사 婆娑〉(개벽, 1923. 11~12)를 발표하고, 1924년 '적로'라는 필명으로 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펴냈다. 〈김영일의 사〉에서는 도쿄[東京]유학생들의 가난과 사상적 갈등을 나타냈고, 〈파사〉에서는 은나라 주왕의 잔인한 학정을 그려냈다. 두 작품 모두 바람직하지 못한 인간을 다루었으나 설명이 충분하지 못하고 관념적이다.

이어 소설 〈땅속으로〉(개벽, 1925. 2~3)·〈R군에게〉(개벽, 1926. 2)·〈농촌사람들〉(현대평론, 1927. 1)·〈낙동강〉(조선지광, 1927. 7)·〈아들의 마음〉(조선지광, 1928. 9) 등을 발표해 프롤레타리아 소설의 형성과 발전에 이바지했다. 이 소설들에서는 초기의 시나 희곡에서 보여주었던 낭만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사실주의에 입각해 일제강점기의 지식인의 고뇌, 농촌의 궁핍, 노동자·농민의 계급적 연대와 사회주의 이상을 담아냈다. 대표작 〈낙동강〉은 이전까지 자연발생적인 수준에 머물던 신경향파 문학을 목적의식적인 프로 문학으로 발전시킨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사회운동가 박성운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비극적인 죽음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민족해방과 계급운동의 전개를 잘 보여준다. 소련에서는 식민지 민족의 한을 노래한 시 〈짓밟힌 고려〉와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운동에 앞장서 농업집단화 정책을 선전·선동하는 시 〈10월의 노래〉·〈볼쉐비크의 봄〉 등을 발표했다. 소설집으로 〈그 전날 밤〉(1925)·〈낙동강〉(1928) 등이 있다. 그밖에 평론으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개벽, 1925. 6)·〈직업·노동·문예작품〉(중외일보, 1926. 12. 1~2) 등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