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더미

조개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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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닷가나 강가에 버린 조가비·짐승뼈 등을 비롯한 생활 쓰레기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유적.

그때 사람들이 버린 조가비가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조개더미유적이라 불린다.

그러나 조가비뿐만 아니라 살림살이에 썼던 토기·석기와 같은 연모와 치레걸이·예술품 등 다양한 유물들이 함께 드러나기 때문에 조개더미라는 말보다는 생활쓰레기터로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다. 영어의 'Shell Mound'를 한자로 옮겨 '패총'(貝塚)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나, 패총은 무덤을 뜻하는 것으로 잘못 생각될 수 있으므로 한자로는 패구(貝丘)가 더 적절한 용어이다.

인류가 바다로 식량을 찾아나선 것은 구석기시대부터이다. 8만 년 전 중기구석기시대에도 바다의 자원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바닷가에 삶의 터전을 잡은 것은 중석기시대부터이다. 중석기시대는 후빙기의 따뜻한 환경이었으므로 추운 기후에 살았던 큰 짐승들이 북쪽으로 가서 먹이 자원이 줄어들게 되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바닷가로 나가 먹이를 많이 찾게 되었는데, 한국에서도 약 1만 년 전부터 바닷가에 살면서 바다에서 나오는 식량을 이용했다. 남해안의 통영 상노대도 조개더미유적에서 중석기 문화층이 드러난 것을 보면 앞으로 더 많은 조개더미에서 문화유적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조개더미유적은 신석기시대가 되면서 많이 나타나며 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한국에서도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남긴 조개더미유적이 바닷가와 섬지방에 많이 남아 있어 신석기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조개더미유적은 단순히 조가비를 비롯한 생활쓰레기들이 쌓여 있는 것은 아니며, 그 안에 집터를 만들거나 무덤으로 이용된 경우도 있다. 선봉 서포항유적에서는 조가비와 흙을 섞어 다져 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지은 것이 보이고, 통영 연대도유적과 욕지도유적에서는 무덤으로 이용한 경우를 볼 수 있다. 조개더미유적은 그때 사람들이 먹고 버린 생활쓰레기가 대부분이므로 조개더미 가까이에는 그들이 살았던 집터가 있어야 하겠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생활근거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일지라도 바다에서 나오는 식량을 1차 가공하는 관계로 인해 남긴 경우에도 조개더미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한 경우에는 조개더미의 크기가 작은 것이 많다. 서해안 바닷가와 섬지방에 남아 있는 소규모의 조개더미들이 그와 같은 경우에 속한다.

조개더미유적의 성격을 밝히기 위한 연구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식량자원으로서 조개더미에서 나온 자료를 분석하여 유적을 남긴 사람들의 사회 규모, 유적 점유기간, 생산활동 등에 관한 내용을 밝혀낼 수도 있다. 또한 조개더미유적은 조가비 성분이 토양을 알칼리성으로 유지시켜줌으로써 일반 유적에는 남아 있기 어려운 짐승뼈·뿔·나무 등 유기질 유물들도 잘 남아 있게 해서 선사시대 살림살이와 사회구조 등을 밝히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