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운기

제왕운기

다른 표기 언어 帝王韻紀

요약 1280년 이승휴가 저술하여 1287년에 왕에게 올린 책이다. 상·하 2권 1책이며, 상권은 반고로부터 금나라까지 중국의 역사를 7언시로 읊었고, 하권은 1·2부로 나누어 단군부터 충렬왕까지의 역사를 서술했다. 1부 〈동국군왕개국연대〉는 전조선·위만조선·삼한·신라·고구려·백제·발해 등의 사적을 7언시로 엮었다. 2부 〈본조군왕세계연대〉는 고려 건국부터 충렬왕 까지의 역사를 5언시로 엮었다.
이 책을 쓸 당시 고려사회는 원에 복속한 시점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승휴는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왕의 선정이 절대적이라고 보았고, 이를 위해 역대사의 교훈을 시로 기록했다. 단군을 민족의 공동시조로 삼은 점은 가장 큰 특징이다.
찬술된 해에 출간된 이후 1360년에 경주에서 중간, 1413년에 3간되었다.

2권(상·하) 2책. 목판본. 이승휴가 1280년(충렬왕 6) 권문과 부원세력을 비판했다가 정계에서 쫓겨나 은둔하던 중 저술하여, 1287년에 왕에게 올린 책이다. 상권은 반고(盤古)로부터 금나라까지 중국의 역사를 칠언시로 읊었으며, 하권은 1·2부로 나누어 단군부터 충렬왕까지의 역사를 서술했다. 1부 〈동국군왕개국연대 東國君王開國年代〉는 전조선·후조선·위만조선·한사군·삼한·신라·고구려·백제·후고구려·후백제·발해의 사적을 칠언시 1,460언으로 엮었다.

2부 〈본조군왕세계연대 本朝君王世系年代〉는 고려 건국부터 충렬왕 때까지의 역사를 오언시 700언으로 기록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고려의 현실에 있다고 했다. 당시 고려사회는 무인정권(武人政權)·몽골과의 전쟁을 거쳐 원(元)에 복속한 시점으로 사회적·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방의 한미한 가문 출신의 문신이던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왕의 선정이 절대적이라고 보았고, 이를 위하여 역대사의 교훈을 시로 기록한 것이다.

본서의 제목이 '제왕운기'인 것도 이러한 사정과 관련이 있다. 내용 중에 원의 비호를 고려왕실의 영광으로 칭송하고, 충렬왕의 치세를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 있는 것도 현재의 실정에서 왕권을 통한 정치와 통치력의 회복을 바라는 저자의 심정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또한 단군을 민족의 공동시조로 삼은 점은 본서의 가장 큰 특징이다. 원래 부여·고구려·신라 등은 각각 자신의 시조설화를 갖고 있었지만, 그는 시례(尸禮)·고례·남북옥저·동부여·예맥부터 삼한·신라까지 모두 단군의 후예라고 했다. 이것은 사학사(史學史)상 매우 중요한 인식의 전환으로 발해도 단군의 후손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동국군왕개국연대〉에 발해를 수록했는데, 이는 이 시기의 사서가 발해에 대해 소홀했던 것에 비하면 대단히 획기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 주에 단군신화를 소개했는데, 〈삼국유사〉와 달리 단군은 환인의 아들 환웅(桓雄)이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으로 만든 후 단수신(檀樹神)과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했다. 이러한 〈제왕운기〉는 이후 고려 왕들에게 높이 평가된 것 같다. 찬술된 해에 출간되었고 1360년(공민왕 9)에 경주에서 중간, 1413년(태종 13)에 3간되었다. 현존하는 최고본은 여말선초의 중간본으로 곽영대(郭英大)와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각각 보물 제418호와 제895호로 지정되어 있고, 삼성출판박물관에 소장되어 판본은 보물 제1091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