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인터내셔널

제3인터내셔널

다른 표기 언어 Third International

요약 1919년에 설립된 각국 공산당들의 연합.
공산주의 인터내셔널(Communist International)이라고도 함. 별칭은 Comintern.

코민테른의 공식 목적은 세계 혁명의 증진이었지만 주로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소련의 통제 기관으로 기능했다.

코민테른은 제1차 세계대전을 둘러싸고 사회주의 제2인터내셔널이 셋으로 나뉘면서 출현했다.

인터내셔널의 우파를 형성하고 있던 대부분의 사회주의 정당들은 자국 정부의 전쟁노력을 지지하여 그 목표에 적대적인 것으로 보이는 적들에 대항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인터내셔널의 '중도파'는 우파의 민족주의를 비방하고 세계 평화의 기치 아래 제2인터내셔널을 재통일하려고 시도했다. 한편 러시아의 레닌이 이끄는 '좌파'집단은 민족주의와 평화주의를 모두 배격하면서 그 대안으로 사회주의자들은 국가간의 전쟁을 초국가적인 계급 전쟁으로 전환시키는 데 힘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1915년 병사와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선전활동을 통해 레닌은 '시민의 평화가 아니라 시민의 전쟁'을 진작시키기 위해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창설하라고 제안했다. 2년 후 레닌은 러시아에서 볼셰비키파의 권력장악을 주도했으며, 1919년 모스크바에서 코민테른 제1차 대회를 소집하여 특히 중도파가 추진중에 있던 제2인터내셔널의 부활 노력을 방해했다. 제1차 코민테른 대회에는 19개국의 대표단과 우연히 모스크바에 체류중이던 비러시아계 공산당원들만이 참석했으나, 1920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제2차 대회에는 37개국의 대표가 참석했다.

제2차 대회에서 레닌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의 가입 조건으로 21개 조항을 제정했다. 코민테른 가입을 위한 이 필요조건들은 소비에트를 본보기로 삼아 세계의 모든 정당들의 당체제를 정비하고 온건한 사회주의자와 평화주의자들을 축출할 것을 요구했다.

코민테른의 행정구조는 소련 공산당과 유사하여 대회의 폐회중에 집행위원회가 활동했으며, 소규모의 이사회가 코민테른의 주요집행기관이 되었다.

점차 코민테른의 권력은 이들 최고 기관에 집중되었고, 이들 기관의 결정사항들은 코민테른에 가입한 모든 정당에 대해 구속력을 갖게 되었다. 또한 코민테른에 대한 소련의 지배는 일찍부터 확립되어 있었는데 코민테른은 소련의 주도로 창설되었으며, 모스크바에 본부가 있었다. 각종 코민테른 행정기구에서 소련 공산당의 대표권은 막강했으며, 대다수의 외국 공산당은 이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 충성심을 느꼈다.

1921년에 이르러서야 세계 혁명이 임박하지 않았다는 현실인식이 있었고, 이러한 현실인식은 코민테른의 정책을 변화시켰다.

즉 코민테른은 노동계급의 폭넓은 지지를 얻기 위해 반(反)중도주의를 강조하지 않기로 하고, 노동자들은 '연합전선'을 결성하여 기존 정권들의 전환을 요구했다. 이 정책은 1923년 코민테른의 좌파가 일시 주도권을 장악했을 때 포기되었다. 그러나 스탈린이 당내 좌파집단을 공격함으로써 1926년에 코민테른 최초의 의장 그리고리 Y. 지노비예프가 축출되고 온건한 사회주의와의 화해가 촉진되었다. 그러다가 스탈린이 다시 우파를 공격하자 코민테른의 정책은 또한번 반전되었다. 1928년 제6차 대회에서 스탈린의 '극좌주의' 정책이 채택됨으로써 다시 한번 중도 사회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주된 적으로 몰렸다.

신흥 파시즘 운동의 위험은 무시되었는데 독일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오히려 사회민주당을 집중 공격했고, 나치스는 민족사회당보다 덜 두려운 대상이라고 주장하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을 붕괴시키기 위해 나치스와 협력했다(독일사). 스탈린 자신이 '1국 사회주의 건설'에 몰두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혁명은 다시 한번 임박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1935년 코민테른의 제7차 대회이자 마지막 대회에서 소련의 국익은 새로운 정책으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독일에 대항하여 잠재적인 동맹군을 얻기 위해 소련은 혁명의 열기를 냉각시켰으며, 파시즘의 패배가 코민테른의 제일의 목표로 선언되었다. 이제 공산주의자들은 중도사회주의자 및 자유주의자들과 함께 '인민전선'을 형성하여 파시즘에 대항했다.

이무렵 코민테른은 소련 외교정책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었다. 인민전선의 프로그램은 1939년 스탈린이 아돌프 히틀러와 조약을 맺음으로써 끝장이 났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과 소련은 교전상태에 들어갔으며, 1943년 스탈린은 공식적으로 코민테른을 해체하여 공산주의자들의 파괴활동에 대한 동맹국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했다. 모스크바는 소련에게 유리하게 외국의 공산당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했는데, 여하튼 상당 부분의 코민테른 조직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안에 고스란히 보존되었다.→ 코민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