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

전체주의

다른 표기 언어 totalitarianism , 全體主義

요약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극단적으로 집단의 이익만을 강조하는 정치 사상 또는 체제.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파시즘 국가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었다. 좁은 의미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당정부를 가리키며, 넓은 의미로는 억압을 통해 개인생활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고 지시하고자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통치체제를 일컫는다. 전체주의 국가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정책적으로 지지하며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거부한다.

이탈리아의 독재자였던 베니토 무솔리니는 1920년대 초반 이탈리아의 새로운 파시즘 국가를 지칭하기 위해 '토탈리타리오'(totalitario)라는 용어를 최초로 만들었고 나아가 이를 "국가 안에 모두가 있고, 국가 밖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에 반대하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기술했다(정칙권력).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에 '전체주의'라는 용어는 일당정부와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넓은 의미에서 전체주의는 강제와 억압을 통해 개인생활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고 지시하고자 하는 강력한 중앙집권통치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러한 중앙집권화된 전체주의의 예로는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BC 321경~185경), 중국의 진(秦:BC 221~206), 그리고 남아프리카 줄루족의 추장 샤카의 통치시대(1816경~28)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아돌프 히틀러 통치하의 전체주의 국가 나치 독일(1933~45)과 요시프 스탈린 통치하의 전체주의 국가 소련(1924~53)은 탈(脫)중앙집권화된 또는 대중적인 전체주의의 예라고 할 수 있으며, 이들 국가에서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대중적 지지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지지는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의 능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것은 오직 근대적인 교통수단과 통신수단의 발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전체주의는 기존의 모든 정치체제를 대신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구축하고 모든 정치적·사회적·법적 전통을 일소해버린다는 점에서 종종 독재·전제주의·참주제와 구별된다. 전체주의 국가들은 산업화나 정복 등과 같은 몇 가지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되 여타 목표들은 무시해버린다.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모든 자원이 투여되고 그로 인한 희생은 고려하지 않는다.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정책적으로 지지하며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거부한다. 이러한 강박관념은 국가와 경합할 수 있는 모든 세력들과 야기될 수 있는 모든 장애물들을 합리화하면서 모든 것을 국가목표라는 관점에서 설명하는 이데올로기를 낳는다. 이어 이에 대한 대중적 지지는 국가로 하여금 최대한 폭넓은 재량으로 어떠한 형태의 정부활동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기능을 한다.

전체주의에서는 어떠한 반대 의견도 죄악으로 낙인 찍히며, 국내 정치에 대한 정책적 차이는 허용되지 않는다. 목표의 추구가 전체주의 국가의 유일한 이데올로기적 기초이기 때문에 목표의 달성이라는 것도 절대로 인정되지 않는다. 전체주의 국가 지배하에서 전통적인 사회제도와 조직은 그 활동을 방해받고 억제된다. 따라서 사회적 조직은 약화되며, 대중은 하나의 획일적인 운동에 더욱 쉽게 흡수된다. 초기에는 허가된 공공단체에 참여하는 것이 장려되다가 나중에는 필수적인 의무가 된다. 낡은 종교적·사회적 유대관계는 국가간의 이데올로기라는 인위적인 유대관계로 대체된다.

다원주의와 개인주의가 쇠퇴하면서 대다수 대중은 전체주의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하게 된다. 개별 인간 사이에 존재하던 무수한 다양성이 훼손되고 국가가 인가한 신념과 행동에 대한 집단적인 순응(최소한 묵인)이 대치되어 나타난다. 전체주의 지배하에서는 대규모의 조직화된 폭력이 허용될 뿐만 아니라 때때로 필요하게 되며, 그러한 폭력은 국가목표의 추구와 국가이념을 최우선적으로 표명하면서 정당화된다. 나치 독일과 스탈린 통치하의 소련에서는 유대인과 쿨라크(부유 자영농민)처럼 박해와 종족 말살을 위해 한 계층 전체가 선택되기도 했다.

이 사례들에서 피박해자들은 모두 어떤 외부의 적과 연루되고 국가의 골칫거리로 비난받았다. 그결과 그들에 대한 반대여론이 거세게 일어나고 군대와 경찰의 손에 맡겨졌던 피박해자들은 속죄양의 운명에 처해졌던 것이다.

전체주의 국가 내의 경찰활동은 종종 경찰국가에서의 경찰활동과 유사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양자간에는 하나의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경찰국가에서의 경찰활동은 알려진 일관된 절차에 의거해 이루어지지만, 전체주의 국가에서의 경찰활동은 법령의 규제 없이 수행되고 예측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통치자의 자의에 의해 움직여진다.

히틀러와 스탈린 통치시대에는 국가의 사무가 불확실하게 처리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이 히틀러 시대에도 결코 폐지된 것은 아니었으나 1933년 제국의회가 통과시킨 수정법에 의해 히틀러는 헌법을 사실상 폐지한 것이나 다름없이 마음대로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법률제정의 역할도 한 사람에게 부여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스탈린도 1936년 소련 헌법을 제정하기는 했으나 그 헌법을 소련 법의 기본골격으로 삼지는 않았다. 대신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스탈린주의의 해석에서 최종적인 해석자가 되었고, 자신의 해석을 마음대로 변경했다.

히틀러와 스탈린, 두 사람 모두 예측 불가능하게 정책을 추진해 국민들 사이에 폭력에 대한 공포감을 고조시켰고, 동시에 그 어떤 반대자도 억압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