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전기

다른 표기 언어 ch'uan-ch'i , 傳奇

요약 중국 당·송대의 문어로 씌어진 단편소설.
(병). chuanqi. (웨). ch'uanch'i.

'창작 의도가 기이한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이 명칭이 붙었다. 또 중당·만당의 작가인 배형이 자신의 소설집을 〈전기〉라고 하여 후인들이 습관적으로 당인들의 단편소설을 '전기'라고 불렀다. 중국 소설의 발전을 살펴보면 당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작가가 의식적으로 소설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당대의 명작으로는 원진의 〈앵앵전 鶯鶯傳〉, 장방의 〈곽소옥전 小玉傳〉, 백행간의 〈이왜전 李娃傳〉, 이공좌의 〈남가태수전 南柯太守傳〉, 두광정(杜光庭)의 〈규염객전 髥客傳〉, 원교의 〈홍불전 紅拂傳〉, 진홍의 〈장한가전 長恨歌傳〉 등이 있다. 또한 전기는 〈모란정 牡丹亭〉·〈도화선 桃花扇〉·〈장생전 長生殿〉 같은 명·청대의 남곡을 가리키기도 한다. 원대와 명초에는 잡극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쓰이기도 했다.

한국문학에 전기가 등장한 때는 당나라와 활발한 교류를 하던 삼국시대 중기였다. 전기문학은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이상하고 신비스러운 사건들이 작품의 내용 속에 포함되면서, 그것을 통해 현실의 벽을 넘기도 하고 현실을 풍자하거나 비판하기도 한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고, 죽은 사람의 혼이 나타나서 생전에 못다한 인연을 나누기도 한다. 꿈이나 환상을 통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미래를 미리 내다보기도 한다. 위기에 처한 인물이 신령한 존재의 도움으로 구출되기도 하고, 그와 반대로 인간이 위기에 처한 동물과 만나 인연을 맺어 혼인을 하기도 한다. 또한 인간 세계를 떠나서 하늘나라나 저승에 다녀오기도 한다.

전기적 요소는 한국의 설화나 소설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삼국시대의 설화 가운데 꿈을 통해 불교적 수도생활의 참 의미를 깨우쳐준 〈조신설화 調信說話〉, 호랑이처녀와 총각의 사랑을 이야기한 〈김현감호 金現感虎〉, 전사한 온달의 시신이 움직이지 않다가 평강공주의 위로를 받고서야 비로소 땅에서 떨어졌다고 하는 〈온달전 溫達傳〉 등에서 전기적 요소를 볼 수 있다.

이같은 전기문학적 전통을 계승한 전기문학의 대표작품은 김시습의 〈금오신화 金鰲新話〉이다. 이것은 5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작품 속에는 거의 예외없이 전기적 요소들이 나타난다. 죽은 사람의 혼을 만나 인연을 맺고,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을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용궁이나 염라국을 다녀오기도 한다. 이같은 전기적 요소들은 몽유록이나 국문소설·야담·한문소설 등에 두루 나타나면서 한국 서사문학의 한 특성을 이룬다.

전기의 발생요인은 사회적 상황과 연관지어 이해할 수 있다. 현실 사회에서 부딪치게 되는 한계와 벽을 상상의 힘으로 극복하고자 한 데서 이같은 문학이 생겨날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현실사회의 모순과 불만을 다소나마 해소하고 정신적 해방감을 맛볼 수 있었다. 전기문학의 생성시기가 역사적 전환기에 해당하고, 전기문학의 소재가 현실적으로 금기시된 사건들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