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지 반란

잔지 반란

다른 표기 언어 Zanj rebellion

요약 아바스 칼리프제국에 대한 흑인노예의 반란(868~883).

바스라의 많은 지주들이 바스라 동쪽의 해안 늪지대의 배수를 위해 수천 명의 동아프리카 흑인(잔지)을 남부 이라크로 데려 왔다. 지주들은 대개 아랍어를 할 줄 모르는 잔지에게 최소한의 호구지책만을 해결해주면서 가혹한 노예노동을 강요했다. 869년 가을, 4대 칼리프 알리와 마호메트의 딸 파티마 사이의 후예로 자처하는 페르시아인 알리 이븐 무하마드가 몇몇 노예노동단(500~5,000명으로 기록은 다양하게 나타남)의 지지를 얻었다.

그는 잔지가 받는 사회적 지위의 부당함을 지적하면서 그들에게 자유와 부를 약속했다. 알리의 제의는 하리지테의 만민평등사상까지 끌어들임으로써 더욱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하리지테의 사상은 모든 사람이, 흑인노예까지도 칼리프로 선출될 수 있고 모든 비하리지테는 이단자로서 성전(聖戰)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잔지의 군대는 패배한 칼리프의 군대에서 도망나온 잘 훈련된 흑인 부대와 불만이 쌓인 지역 농민들을 흡수하면서 규모와 세력이 급속히 성장했다. 869년 10월 그들은 바스라의 군대를 격파하고 곧바로 잔지의 중심 거점으로 알무크타라(아랍어로 '선택된 것'이라는 뜻)를 정했는데 그곳은 해안 소택지대 중에서 운하로 둘러싸여 접근하기 어려운 건조지역에 있었다. 반란군은 페르시아 만의 알우불라 항구를 점령함으로써(870. 6) 남부 이라크에 대한 통제권을 손에 넣었고, 바스라로 가는 교통수단을 차단해 남서부 이란의 아와즈도 장악했다.

신임 칼리프 알 무타미드(870~892 재위)의 동생 알 무와파크가 이끄는 칼리프의 군대는 아직 반란군에 대처할 여력이 없었다. 잔지는 871년 9월 바스라를 약탈하고, 이어서 872년 4월에 알 무와파크의 군대를 격파했다.

872~879년 알 무와파크가 독립적인 페르시아 왕조인 사파르 왕조의 팽창을 동부 이란에서 저지하는 데 여념이 없는 동안 잔지 세력은 와시트를 점령하고(878) 이란의 후지스탄에 자리잡았다. 그러나 879년 알 무와파크가 흑인노예들에 대한 대규모 공세를 펴서 1년 안에 잔지의 2번째 도시, 알마니아(난공불락인 곳)를 탈환하고 후지스탄에서도 잔지 세력을 축출했다. 881년 봄에 알 무와파크는 티그리스 강의 대안에 세워진 특이한 도시로부터 알무크타라에 대한 포위공격을 했다.

2년 뒤 883년 8월 이집트 군단으로 보강된 알 무와파크는 마침내 알무크타라를 점령하고 알리의 수급을 들고 바그다드로 귀환하여 반란을 완전히 진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