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스

작스

다른 표기 언어 Hans Sa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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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494. 11. 5, 뉘른베르크
사망 1576. 1. 19, 뉘른베르크
국적 독일

요약 독일의 시인·작곡가.

대단한 인기와 다작 작가로 미학과 종교에 미친 영향이 크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라는 오페라에서 이상적인 인물로 묘사되었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부분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을 찬양했는데, 작스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재봉사의 아들로 태어나 라틴어 학교에서 공부한 뒤 1509년 구두장이의 도제가 되었고, 1519년 일류 구두수선공이 되었다.

그당시 동업조합에 소속된 많은 노동자와 숙련공들은 정교한 규칙에 바탕을 두고 노래연습에 열중했는데, 명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노래경연대회에서 솜씨를 입증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작스는 1520년경 뉘른베르크 노래학교의 교사가 되었고 뮌헨에서 명가수 교습소를 운영했으며 1554년 뉘른베르크 단원을 이끌었다.

작스가 1514년부터 쓰기 시작한 4,000편의 노래 가운데 일부는 종교와 연관된 것이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을 일찍부터 옹호한 그는 루터를 비유한 〈비템베르크의 나이팅게일 Die Wittembergisch Nachtigall〉(1523)이라는 시를 썼는데, 이 시는 즉시 유명해졌고 뉘른베르크의 종교개혁을 촉진했다.

그가 쓴 6,000편의 시 중에는 200편의 운문 희곡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희곡들은 대부분 사순절 축제 때 군중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쓴 통속희극이다. 작스는 예술에 종사하면서도 여전히 구두수선 일을 계속했다. 7명의 자식을 잃고 1560년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자 슬픔에 빠졌지만, 66세 되던 1561년 17세 소녀와 결혼한 뒤, 다시 쾌활한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죽은 뒤에는 사실상 잊혀졌지만, 2세기가 지난 뒤 괴테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낙원의 구두장이 Der farent Schuler ims Paradeis〉를 비롯한 그의 몇몇 희곡들은 오늘날에도 공연되며, 르네상스 시대 음악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난 결과 그의 노래들도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