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천고치

임천고치

다른 표기 언어 Lin-ch'uan kao-chih , 林泉高致

요약 중국의 산수화론서.
(병). Linchuan gaozhi. (웨). Linchuan kaochih.

1권 6편. 북송(北宋 : 960~1127)의 곽희와 그의 아들 곽사가 함께 지은 것이다. 〈산수훈 山水訓〉·〈화의 畵意〉·〈화결 畵訣〉·〈화제 畵題〉의 4편은 곽희가 저술하고 곽사가 주를 달았으며, 〈화격습유 畵格拾遺〉·〈화기 畵記〉의 2편은 곽사의 저술이다. 곽희는 산수화의 대가이면서 탁월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저술된 각 편은 그의 창작사상과 경험을 총괄한 것이며, 그 가운데에서도 〈산수훈〉이 가장 중요하다. 그는 산수화에서는 의경(意境)이 있어야 하며, 진실한 묘사를 통해 아름다운 상상을 체현해야만 비로소 통일되고 완전한 예술형상을 구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정신을 집중해서 대자연을 관찰하여 그 특징과 법칙을 파악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즉 산을 관찰할 경우 가까이서도 보고 멀리서도 봐야 하며, 정면에서도 보고 측면에서도 보며, 뒤에서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날이 흐릴 때도 보고 날이 맑을 때도 보며, 아침에도 보고 저녁에도 보아야 한다고 했다. "실제 산수의 시내와 계곡은 멀리서 바라보아 그 세(勢)를 취하고, 가까이에서 관찰하여 그 질(質)을 취한다", "봄산은 담박하고 아름다워 미소짓는 듯하고, 여름산은 자욱하고 푸르러 흠뻑 젖은 듯하고, 가을산은 맑고 깨끗하여 단장한 듯하고, 겨울산은 어둠침침하여 잠자는 듯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지리환경의 차이와 시간·기후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산수풍경의 다양한 변화를 깊이 이해하고, 거기에 교묘한 연상을 부여할 때 비로소 창작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곽희의 주장이었다. 곽희는 또 '고원'(高遠)·'심원'(深遠)·'평원'(平遠)이라는 3원의 투시법을 제기함으로써, 산수화가로 하여금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창작력을 발휘하여 산수풍경을 묘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는 또 선배 대가들을 본받아 "받아들이고 관찰하며 폭넓게 연구해서 스스로 일가를 이룰 것"을 주장했다. 또한 대자연에 깊이 파고들어가서 "마음껏 유람하면서 충분히 보고 가슴 속에 뚜렷하게 담아두면, 눈으로 견소(絹素 : 서화용 흰 명주천)를 보지 않고 손으로 필묵을 알지 못하더라도, 뚜렷하고 또는 아득한 것이 나의 그림이 아닌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회화의 작용과 필묵의 표현방법 등의 문제를 논했다. 곽사의 〈화기〉는 아버지 곽희의 회화창작 활동을 기술한 것으로, 곽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