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국민회의당

인도 국민회의당

다른 표기 언어 Indian National Congress , 印度國民會議黨

요약 1885년에 창설된 폭넓은 지지기반을 가진 인도의 정당.
별칭은 회의당(Congress Party).

인도 국민회의당(Indian National Congress)
인도 국민회의당(Indian National Congress)

영국으로부터 인도의 독립운동을 얻어내기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1947~77년과 1980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집권하고 있다. 회의당 첫 전당대회는 1885년 12월에 열렸다. 1917년 B. G. 틸락과 애니 베산트 휘하의 극단주의적인 자치파가 주도권을 장악할 때까지 회의당은 매년 온건한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이 당은 1920, 1930년대에 마하트마 간디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1919년의 헌법개정에 대한 영국의 반응이 미온적인 데 항의하는 비협조 운동을 전개했다. 제도권 내에서의 정치활동을 신봉하는 회의당의 다른 파벌은 스와라지(자치)당이라는 이름으로 1923, 1937년에 경선에 나서, 1937년 선거에서 승리했다. 제2차 세계대전 개전시 영국이 인도의 의회기구와 협의 없이 인도를 영국의 동맹참전국으로 만들어버리자 의회당은 인도의 완전한 독립이 주어지기 전에는 영국의 전쟁수행노력을 지원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1942년 영국은 "인도를 포기하라"는 대규모 시민 불복종 운동을 주관했다. 1947년 인도 독립법안이 통과되었고, 1950년 1월에는 독립국 인도의 헌법이 반포되었다.

1951~64년 자와할랄 네루가 회의당을 장악하여 1951~52, 1957, 1962년 선거에서 각각 압승했다. 회의당은 1964년에 랄 바하두르 샤스트리, 1966년에 인디라 간디(네루의 딸)를 각각 당수와 총리로 선출했다. 그러나 1967년에 인디라 간디는 공개적인 반대를 극복하고서 자신의 지위를 지킬 수 있었으며 1969년에는 자신을 축출한 당내의 노동조합주의 지도자들과 관계를 단절했다. 그러나 1971년 선거에서 인디라 간디의 신회의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1975년부터 인디라 간디의 정부는 점차 권위주의적으로 되었고 야당의 불안은 가중되었다.

1977년 3월 총선에서 야당인 자나타당이 회의당에 대해 295 대 153으로 압승했으며 간디 자신도 자나타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1978년 1월 2일 그녀는 추종자들과 함께 회의당을 탈당하여 자칭 `진정한' 인도 국민회의당이라는 회의-I(인디라의 머리글자 I)당을 결성했다. 11월에 그녀는 의원으로 재선되어 1980년에 다시 총리가 되었다. 그녀의 아들 라지브 간디는 1982년에 당의 명예총재가 되었으며 1984년 10월 인디라 간디가 암살되자 총리직에 올랐다.